‘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첫날···모호한 처벌 규정에 “반쪽짜리 법” 지적
정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첫날···모호한 처벌 규정에 “반쪽짜리 법” 지적
  • 한다원 기자(hdw@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1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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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SNS·사내 메신저 등 온라인 공간도 해당···'직장 내 혼란' 우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처벌 규정 모호는 법적 한계로 남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 사진=셔터스톡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 사진=셔터스톡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따돌림, 폭언 등이 근절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그동안 형법이나 노동조합법 속에서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 눈에 띄지 않는 괴롭힘 등에 시달렸던 수많은 직장인에게 해당 법은 단비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처벌 규정이 모호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 법에서 제외됨으로써 ‘법의 사각지대’를 남겼다는 것이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노동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 내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것 ▲그 행위가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그밖에도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나 사내 메신저 등 온라인 공간에서의 행위도 인정된다.

◇"취업규칙 등 통한 자율 예방·조치 시스템 구축에 중점"

법 시행 첫날, 직장 내에서는 괴롭힘 금지법을 놓고 극명한 입장차가 나타났다. 젊은 축에 속하는 2030세대 직장인들은 법 시행을 반기는 분위기지만, 집단주의가 강한 일부 기성세대 임직원은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이 커지거나 펜스룰이 처질 수 있다며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이아무개씨(27)는 “윗선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게 사실 괴롭힘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며 “팀장님이 오늘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조심스럽다고 하던데, 법 시행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류업체에 근무 중인 유아무개씨(28)는 “업무 특성상 직원들끼리 업무를 조율하고 휴가를 쓰는데, 상사가 휴가를 3일 이상 내면 눈치를 준다”며 “농담식으로 ‘휴가 다녀와서 일 열심히 하라’고 조언하며 팀 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생각해보면 그동안 수도 없이 괴롭힘을 당한 것 같은데 앞으로는 증거를 수집해야겠다”며 “혼자 속앓이를 하거나 동료들과 풀어 왔는데 앞으론 법 적용이 돼 안심”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27일부터 지난 1일까지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참거나 모른 척했다는 응답은 65%로 높게 나타났다.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6.6%에 그쳤다. 참거나 모른 척한 이유로는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6.4%)’가 가장 많았고, 응답자 29%는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이에 반해 기성세대에 속하는 기업 임원들과 부서장 등 간부직 사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애매한 법 기준 탓에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해로 이어져 오히려 상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한 광고대행사 팀장은 “팀원들과의 친목 다지기 목적으로 퇴근 전에 저녁을 먹자고 하거나, 퇴근 후에 저연차 직원들에게 격려 또는 고쳐야 할 점을 충고 삼아 메시지로 전하곤 하는데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속한다”며 “의도는 ‘친목’인데 받는 사람에 따라 괴롭힘으로 적용돼 불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임원은 “이미 근로단축제도가 시행된 이후 직원들한테 일을 함부로 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까지 시행되면 협업하는 과정에서 더 어려움이 생길 것 같다”며 “말 한마디 하는 게 조심스러워져 일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모호한 처벌 규정, 5인 미만 사업장 배제돼 ‘법 사각지대’ 존재

이번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그동안 만연했던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가해자를 처벌할 규정이 별로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용자가 회사 내부적으로 가해자를 징계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할 조항도 없을뿐더러 5인 미만 사업장도 이번 법에서 제외돼 ‘반쪽짜리 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대표이사의 경우 감사가 이사회를 소집해 사건을 조사하고 징계하도록 돼 있는데 이사들이 대표를 징계하는 것은 사실상 현실과 어긋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지방노동청에 신고할 수는 있는데 해당 기업에 상담 지도를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현실적으로 법적 접근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하되 처벌보다는 사업장에서 취업규칙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예방 및 조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사업장에 속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직장인들도 비관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선 5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 사항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불합리한 조치를 당하더라도 특별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실제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최근 제보를 받은 직장 내 괴롭힘 사례 2만5000여 개 중 상당수가 정규직 상사가 파견직·용역직·특수고용직 등과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행하는 경우였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스탭은 “하루 평균 40건 정도에 달할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 제보가 많은데,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까지 해당 법이 적용되기 위해선 별도 하위 법령 개정이 필요한 점과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는 점은 한계”라면서 “정부가 법 개선을 위한 검토를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에게 제도 설명 및 시행 준비를 위한 안내를 실시했다”며 “교육자료와 관련 매뉴얼을 배포해 적극 홍보한 만큼 이번 법 시행이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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