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업 해외 공장 물량 수입·불산 국산화 가능성 등 타진···"현실화 어려워"
화이트리스트 추가 제재가 더 타격 클 듯···삼성, 전 사업 비상대책 준비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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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광폭 행보에도 일본의 수출규제가 만들어낸 그늘은 여전하다. 업계는 근본적인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한 데다가, 단기적으로 일본 기업의 일본 밖 해외 공장 물량을 우회해 들여오는 수입 방식도 실현하기 어렵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여기에 내달부터 일본 정부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를 넘어 추가적으로 수출 제재를 강화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파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와 관련해 ‘3개 주요 소재의 긴급 물량을 확보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이 부회장의 출장에 대한 성과를 평가하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7일부터 5박 6일간 일본 출장을 다녀온 후, 지난 13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사업부 사장단의 긴급 회의를 소집해 일본 정부 제재 장기화 대비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 계획) 수립을 주문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아직까지 방법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이번 출장 성과를 통해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결론엔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사장단 회의도 뚜렷한 대책을 마련한다기보다 현 상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이번 일본 출장을 통해 일본 기업의 해외 공장 물량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방안을 마련했을 것으로 관측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불화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개별 허가 방식으로 전환했다. 심사에만 약 90일이 걸리는 까닭에 삼성전자의 제품 양산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불화수소의 경우 국내 솔브레인 등의 업체를 통해 일부 국산화됐으나, 여전히 고순도 제품의 경우에는 일본산을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 심사를 번거롭게 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이상 한국이 일본 기업의 해외 공장 물량을 수입하려고 해도 당국 심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본다. 새롭게 의미를 갖는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해외 공장 제품도 일본 기업의 소재나 부품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최종 수출 지역이 한국인 경우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평 LG경제원 수석연구위원은 "그나마 일본 기업의 해외 공장 물량을 수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며 "일본이 다른 국가에 수출한 제품을 다시 한국으로 들여오는 우회 수입 방식은 불법에 가까워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소재 국산화를 장기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발등의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의 경우 일본 수출규제 강화 조치 이후 국내 업체로부터 조달하는 불화수소 공급량에 변동 상황이 없는 상태다. 사실상 신제품이 반도체 양산 라인에 도입되기까지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안으로 꼽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제품을 양산 라인에 도입하려면 시제품 제작부터 품질 평가를 거쳐야 한다”면서 “원판이 칩 형태로 나오기까지만 40~50일이 걸리는데, 소재를 국산화한다고 해도 실제 도입까진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소재 및 기술 국산화를 하고 난 뒤 일본에서 가격을 낮추면, 투자를 선행한 우리 기업의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소재 국산화 정책엔 전략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소재 공급선을 마련해 발등의 불을 끈다고 해도 장기적인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일각에선 궁극적으로 내달 22일경 발효될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삼성전자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관측한다. 이번 삼성전자 사장단의 긴급 회의 역시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소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이 배제될 경우 1100여 개의 품목 수출이 개별 허가 방식으로 전환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품을 넘어 스마트폰·TV 등 주력 사업에도 타격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정부는 해당 안건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 위해 법률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이 연구위원은 “이번에 발효된 수출규제 강화 조치와 달리,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훨씬 더 오랜 기간 복구되기가 어려운 조치“라며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도록 국가 간 협의를 하는 것이 급선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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