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그룹 대표할만한 인물 참석 요청···정기선 참석 ‘콕’ 집지 않아”
정기선 둘러싼 그룹 안팎 평가 엇갈려···“글로벌 네트워크” vs “직원들과 불통”

왼쪽부터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아산재단 이사장).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아산재단 이사장).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그룹을 대표할만한 자리에 잇따라 참석하면서 ‘총수’로서 행보에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회사 측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와 배치되는 발언과 여러 정황들이 해당 해석에 힘을 더해주는 양상이다.

15일 재계 등에 따르면, 이 같은 해석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장면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포착됐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등이 이슈가 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 주요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날 현대중공업그룹 대표로 정기선 부사장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주요 참석인사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KT 황창규 회장 등이다. 출장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총수가 없는 포스코·농협중앙회·KT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오너 경영진들이 자리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대주주 정몽준 이사장의 그룹 내 직함은 전무하다. 그간 정치계·축구계 등에서 활동하며 주주로서의 역할만 해왔다. ‘막후경영’ 의구심을 의식한 듯 업체 측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조해왔다. 정 이사장은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직에 올랐으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경영과는 거리를 뒀다.

이후 그룹을 대표할만한 자리에는 줄곧 전문경영진들이 대신했다. 현대중공업 안팎에서는 그렇기에 이번 정 부사장의 청와대 간담회 참석은 더욱 의미가 깊은 행보라 지적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평소 현대중공업의 행보에 비춰봤을 때, 이날 정기선 부사장보단 권오갑 부회장(현대중공업지주 대표) 혹은 가삼현 사장(현대중공업 대표) 등의 참석이 어울렸다”고 했다.

지난달 정기선 부사장은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도 그룹을 대표해 면담했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미국 셰브론 경영진들과도 만났다. 자연히 정 부사장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도 잦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그룹을 대표하는 이미지 구축을 위한 행보”로 풀이했다.

다만 현대중공업 측은 과도한 해석이라며 경계했다. 빈 살만 왕세자 및 셰브론 경영진들과의 잇따른 접견은 직책에 맞는 행보였다고 해명했다. 정 부사장은 현재 그룹 내에서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현대중공업 그룹선박·해양영업 대표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등의 직책을 맡아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업체 관계자는 “셰브런 경영진의 방한은 연례적으로 이뤄지고,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과도 차례로 만난다”며 “통상 영업파트에서 담당하는데 정 부사장이 선박·해양영업 대표를 맡고 있어 나가게 된 것이다”고 언급했다. 청와대 간담회에 고위 임원진들 대신 정 부사장이 참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측 요구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정 부사장을 콕 집어 요청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렇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상반된 입장을 표했다. 시사저널e와 통화에서 대한상의 관계자는 “(그룹 등을)대표 할 만한 인사의 참석을 요청했을 뿐”이라며 “실무진에서 착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여느 그룹에도 특정인을 지목해 참석해 달라 한 적 없다”고 시사했다.

재계에선 정 부사장을 두고 “재벌 3·4세들의 특징 중 하나인 글로벌 네트워크가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기자 출신으로 2006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크레디트스위스그룹·보스턴컨설팅그룹에 차례로 재직하다 2013년 복귀했다. 복귀 2년 만인 2015년 임원직에 올라 상무·전무 등을 거쳤으며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그룹 내부에서는 정 부사장을 향한 비판이 적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추진와 관련해 노사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직원과의 소통에는 입과 귀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재직자는 “최대주주의 아들이자, 본인 역시 대주주인 경영인으로서 대외 행보에만 적극적일 것이 아니라, 대내적 책임감 또한 고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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