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 규제 장기화되면 韓 4분기까지 경제 하락세 불가피
첫 대면 협상인 양자협의 놓고 온도차···“입장 분명히 전달할 기회”
화이트리스트서 제외 시 추가 소재·부품 수입 어려워···경제 불확실성 극대화

한일 양국이 수출 규제와 양자협의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한일 양국이 수출 규제와 양자협의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정부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2.5%로 하향 조정한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의 불확실성에 수출 반등이 어렵고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당초 정부는 올해 경기를 ‘상저하고’로 예상했지만, 현재 흐름상 하반기 경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만해도 반도체 수출은 우리 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반도체 업황 부진 흐름이 이어지면서 하반기 경기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강국인 우리나라의 경제가 하반기에 더 악화되면 전체 글로벌 경제도 흔들릴 수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일 양국은 모두 이번 무역갈등을 장기전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반도체 수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 내외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제재 지속 여파로 수출 물량은 10% 감소하게 되고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對)일 무역적자는 240억 달러로 교역국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핵심품목의 대일의존도는 평균 42%다. 특히 석유화학제품인 파라자일렌(PX)을 만들 때 사용하는 원료인 자일렌, 자동차의 경량화와 내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고장력강판(하이텐) 등의 일본 상품 의존도는 각각 95.4%, 65.0%로 높은 편에 속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무역진흥기구(IETRO)는 아시아 대양주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에서 2018년에 영업흑자를 예상하는 기업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을 한국으로 꼽았다. 첨단산업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특성상 D램,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50~70% 점유율을 차지하는 한국 기업의 생산 차질은 연쇄적으로 일본 내 다른 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日무역보복 조치에 우리 정부 ‘맞대응’ 전략 취해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반도체 제조 등 핵심 소재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하자 문재인 정부는 결국 강대강 대응을 시사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의 본격 시행과 오는 18일 일본 정부가 예고한 추가 보복 조치에 맞서 양국 간 소통과 협력 대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거론했다.

청와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로 규정하고 장기전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내기업 총수를 만나 “일본 정부가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경고하는 듯 한 메시지를 내비쳤다.

아울러 정부는 일본 보복 조치를 놓고 단기적으로 수입선 다변화와 추경예산 반영 등을 제시했고, 장기 정책으로 주력산업의 국산화 비율을 높여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개선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련 검토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를 당초 이낙연 국무총리가 언급한 1200억보다 더 많은 액수를 예상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부처가 대책을 제기하고 있다”며 “여러 부처와 협의 단계이기 때문에 추경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홍 부총리는 “당장 올해 하반기라도 착수할 필요가 있는 사안에 대해 부처로부터 1차 요청받은 것들을 지난주에 한번 빠르게 검토한 초기본이 1200억원”이라며 “부처에서 그보다 더 많은 액수를 기재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처에서 이 사태를 보고 내년이 아니라 올해 하반기라도 긴급하게 사업을 착수하자는 요구 사업이 많아지고 있다”며 “관계 부처와 협의한다면 금액이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올해 초부터 관계 부처 간에 마련해왔고 7~8월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일 첫 공식 대면, 양국 이견차 여전

이러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12일 오후 ‘한일 수출규제 양자협의’를 갖는다. 일본은 공식 만남의 격과 급을 낮추는 이른바 형식 파괴 전략을 쓰면서 양자협의 대신 설명회라는 표현을 사용해 국가 간 협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를 과장급으로 낮춘 데 이어 회의 수준도 떨어뜨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초 정부는 양자협의 대표를 국장급 이상으로 할 것을 일본 측에 요청했다. 고위급이 직접 나서 속전속결로 갈등을 해결하자는 취지에서다. 특히 우리 정부는 양자협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수출규제 관련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첫 기회이기 때문이다.

협상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수출규제를 결정하면서도 양국의 공식 채널을 통해 구체적인 근거를 밝힌 적이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양자협의를 국장급 이상 또는 고위급 협의로 잇는 일종의 지렛대 역할로 활용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략물자 통제가 전문적이고 기술적 분야라 일본의 조치 경위와 수출허가 절차 변경 내용 등을 실무진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다”며 “향후 제도 운용 방향과 수출규제 관련 세부 사항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측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기회고 향후 급을 격상한 논의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장재철 KB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계는 제재 대상인 일본산 소재의 약 3개월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반도체 제품의 재고 수준이 높아 적어도 연말까지는 생산에 큰 차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도체 수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 내외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제재가 지속돼 그 여파로 수출물량이 10% 감소하면 경제성장률이 0.6%포인트가량 하락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의 허가 신청을 면제하는 국가 목록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추가 소재·부품 수입이 어려워질 수 있어 올해 하반기, 특히 4분기 이후 생산과 수출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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