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제3국에 의한 중재위’ 설치 요구 놓고 오는 18일 추가 보복 예고
수출 규제로 세계 경제 질서 혼란···정부, 외교·안보라인 내세워 국제사회 공조 주력
안보 이슈에서 ‘한·미·일 3각공조’ 강조하는 美, 중재역할에 ‘신중론’ 기조

일본 정부가 오는 18일 추가 경제 보복 조치를 예고하면서 우리 정부가 외교, 안보 라인을 내세워 국제 공조에 집중하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일본 정부가 오는 18일 추가 경제 보복 조치를 예고하면서 우리 정부가 외교, 안보 라인을 내세워 국제 공조에 집중하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은 오는 18일까지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측이 수용 불가 방침을 내놓으면서 일본 정부가 오는 18일을 기점으로 추가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한일 갈등과 수출 규제 조치의 장기화에 따른 기업들의 막대한 피해를 고려해 외교·안보 라인 고위급을 내세워 국제 공조를 강조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9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첨단소재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 긴급 안건으로 올려 본격적으로 국제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수출규제를 안건으로 올린 데는 일본의 부당성을 국제 사회에 알려 이번 사안을 타개해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특별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WTO 이사회에 수출규제를 안건으로 올리면서 우리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 라인 고위급 대미 공조에 집중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국제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30대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사실상 비상체제를 선포했다. 우리 정부는 수출 규제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외교적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일본 정부가 이에 화답해주길 바라고 있다.

일본의 무역제한 조치는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 질서를 혼란시킬 수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외교 라인을 다각도로 활용해 이번 수출 갈등을 극복하는 데 애쓰고 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지난 10일 오후 11시45분부터 약 15분 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직접 통화를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일본의 무역제한 조치가 우리 기업에 피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 체계를 교란시킴으로써 미국 기업은 물론 세계 무역 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의 한일 갈등 상황이 한일 양국 간의 우호협력 관계는 물론 한미일 3국 협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외교부는 “강 장관은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의 이번 조치 철회와 함께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를 희망하고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며 “폼페이오 장관은 이해를 표명하고, 양 장관은 한미·한미일간 각급 외교채널을 통해 소통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전격 방미한다. 김 차장은 방미 기간 카운터파트인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 회의(NSC) 부보좌관을 비롯해 백악관 및 미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북핵 이슈를 논의하고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 차장의 이번 방미는 예정됐던 일정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본 수출 규제에 심각성을 인지한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급파견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실무진들도 미국과 일본으로 파견됐다.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 국장도 11일(현지시간)워싱턴DC에 도착해 롤런드 드마셀러스 국무부 국제금융개발담당 부차관보, 마크 내퍼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 등과 회동할 예정이다. 외교부의 담당 국장인 김정한 아시아태평양 국장도 같은날 일본을 방문한다.

◇美가 한일 갈등에 중재역할로 나설지는 ‘미지수’

우리 정부가 강경화 장관이 폼페이오 장관과 통화한 당일, 통화 사실을 공식 발표한 것과 달리 미 국무부는 양 장관의 통화 내용 언급에 신중을 다하는 모습이다. 미국도 한일 경제 관계에 대한 중재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부가 양 장관의 통화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이해를 표명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외교·안보 라인의 다각적 노력에도 미국이 한일 수출규제에서 적극적인 중재 역할로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 때와 달리 한일 중재 역할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북핵 문제 등 안보 이슈에서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해왔던 만큼 한일 경제 갈등 속에 한 국가의 편을 드는 모습은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다.

실제 미국 상원의원들도 미국의 중재역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소리(VOA)는 11일 미 의원들은 한국에 대한 일본 수출 규제 강화로 고조된 한일갈등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미국이 나서기에 앞서 한일 양국이 스스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며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선 대체로 신중한 반응”이라고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상원 외교위원장인 제임스 리시 공화당 의원은 “한일 모두 성숙한 사회이고, 많은 일을 겪어왔다”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도 “신뢰할 수 있는 두 동맹국인 한일 양국 사이에서 책임있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과 무역갈등을 빚으며 보호주의 명분을 쌓고 있는 미국이 양국 중재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 정부에 외교적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도 “미국의 중재역할을 기대하기는 사실 힘들고,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일본 규제가 풀릴 것이란 기대도 접어야 한다”며 “결국은 전면전, 장기화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정부가 한일 갈등을 풀 대응책을 마련하고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한일 갈등을 탈피할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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