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관리 직원이 실소유한 회사에 비파괴검사 의뢰···장비·인력 갖추지 않아
사측, ‘개인 비리’라며 행정소송 냈지만 기각···법원 “감독·통제 못한 책임 있어”

현대로템의 차륜형장갑차. / 사진=방위사업청
현대로템의 차륜형장갑차. / 사진=방위사업청

현대로템이 국내기술로 개발한 전투용차량 ‘차륜형장갑차’의 생산 공정 과정에서 자격이 없는 회사에 품질 검사를 맡긴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국방품질경영체제인증(국방인증)으로 각종 혜택을 받고 있는 현대로템은 이 사건으로 국방인증이 취소됐다가,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효력을 정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본안소송에서 최근 패소하면서 국방인증이 취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2016년 6월 현대로템 주관으로 진행한 전투용차량 차륜형장갑차의 연구개발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방위사업청은 캐터필러(caterpillar,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궤도형장갑차’에 비해 자동차처럼 바퀴로 움직이는 ‘차륜형장갑차’가 기동성, 수송성, 운용성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홍보했다.

방위사업청 발표 이후 현대로템은 2016년 12월 우리나라와 ‘차륜형장갑차 초도생산 외 20항목’에 관해 45억여원의 남품계약을 체결했다. 2019년까지 체결 예정된 계약으로 합계 총액은 250억여원에 달한다. 현대로템은 2017년 12월에도 ‘차륜형장갑차 2차 양산 외 34항목’에 관해 계약금액 100억원의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까지 체결 예정된 계약으로 합계 총액은 3900억여원이다. 현대로템은 현재 차륜형장갑차를 양산하는 한편, 해외시장 공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대로템은 지난 2017년 12월 방위사업법에 따라 ‘품질경영체제인증’을 받았다. 군수품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품질경영체제를 구축했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국방인증을 받은 회사는 군수품의 조달 및 방산물자 연구개발 등을 위한 계약시 가산점 부여 등 각종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국내 방산업체가 100여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셈이다.

그런데 현대로템은 이 사건 계약의 이행 과정에서 차륜형장갑차에 대한 비파괴검사를 D사에 위탁해 수행했다. 하지만 사후에 D사가 비파괴검사법에 따라 요구되는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D사는 현대로템의 품질사업본부 소속 방산품질관리팀장 A씨가 실소유한 업체였던 것이다.

조사결과 D사의 주식은 A씨의 장녀가 95%, A씨의 지인이 5%를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D사는 이 사건 용역계약 체결 당시인 2016년 12월 비파괴검사에 필요한 장비나 인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비파괴검사법에 따른 등록도 하지 않은 업체로 드러났다.

각종 감독과 통제 의무가 있었던 현대로템은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D사와 기술용역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9월까지 체결된 계약금액은 12억원이었고, 그 중 4억3000여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현대로템은 2018년 3월에서야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방위사업청에 알렸다.

현대로템은 2018년 5월 A씨를 ‘차명회사 운영 및 부당이득 제공’을 이유로 해고했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절차품질관리팀 부장은 정직 1월을, 품질사업부장은 감봉 2월의 처분을 각각 받았다. 현대로템은 또 A씨를 사기, 비파괴검사기술의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기술품질원은 지난해 6월 현대로템이 ‘조직의 윤리경영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업수행을 위한 전반적 관리사항을 확인하고 승인한 기록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중(重)부적합’ 결과를 내놓았다. 그밖에 5건의 경부적합, 8건의 관찰사항이 지적됐다. 방위사업청은 2018년 8월 현대로템의 국방 인증을 취소했다.

◇가처분신청으로 국방인증 유지 상태···패소 확정시 각종 ‘인센티브’ 사라져

현대로템은 지난해 8월 방위사업청의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직원 개인의 비리로 벌어진 일인데 국방인증 취소는 과하다는 취지였다. 또 처분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현대로템 측은 재판과정에서 “경영진에 속하지 않은 직원 개인이 비위행위를 저지른 것만으로 회사의 ‘윤리경영’이 품질경영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결과적으로 차륜형장갑차에 대한 비파괴검사의 수행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인증 취소로 회사가 감수해야 할 손실 등을 고려하면 처분이 과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대로템이 적절한 감독과 통제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이 이 사건 사고를 유발한 주요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또 국방 인증의 기준을 엄격히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며 인증 취소 처분이 과하지도 않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현대로템이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품질경영체제 인증을 취소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가 효율적인 조직관리 및 업무수행을 위해 중간관리자에게 전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그에 대한 적절한 감독이나 통제를 가할 체계를 구축하거나 그러한 체계를 적절히 운용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방규격이 정한 품질경영체제인증기준에 부적합한 사정이 발생했다면, 최고경영자의 잘못이 없다고 평가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직원 A씨가 실소유한 비파괴검사업 무등록업체가 용역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은 최고경영자가 공정거래 실현이나 부패방지 보장을 이루지 못해 ‘국방규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황’에 해당한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무등록업체가 수행한 비파괴검사를 거쳐 납품한 군수품은 의도된 결과에 부합하는 결과라고 볼 수 없다”며 “품질경영체제의 능력이 저하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현대로템이 D사를 전략구매 형태로 선정한 것이 현대로템의 구매 프로세스인 ‘업체선정 및 입찰업무절차’를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품질경영체제에 요구되는 사항을 다수 누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완제품 형태로 생산된 군수품은 군용이라는 특성상 상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하자 발견이 어렵고 예측불허의 전시상황에서 예정된 성능을 발휘해야 하는 등의 품질이 보장돼야 한다”며 “국방규격에 부합하는 체제 및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이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고 그 기준을 엄격히 관리할 필요성이 크다. 원고가 인증취소로 불이익을 입긴 하지만 공익에 비해 그 피해가 크지 않다”고 판시했다.

1심 본안 소송에서 패한 현대로템은 즉시 항소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1심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국방인증 취소 효력이 정지돼 국방인증이 유효한 상태”라고 말했다. 법원에 따르면 1심이 인용한 가처분 신청의 효력은 1심 판결 이후 30일까지다. 현대로템은 2심에서도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제기하는 방법으로 국방인증 효력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본안소송에서 최종 패소할 경우 6개월이 지난 이후에야 국방인증을 다시 신청 할 수 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품질경영체제인증을 받은 업체는 군수품의 조달 또는 방산물자의 연구개발 등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가산점을 부과 받거나, DQ(Defense Quality)마크 인증심사시 공장심사 또는 사후관리심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생략 받는 등 상당한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국방인증이 취소되면 차륜형장갑차 뿐만 아니라 다른 입찰에도 기존의 인센티브가 사라진다”면서 “현대로템이 최종 패소할 경우 국방인증 재신청을 위해서는 최소 6개월은 소요된다. 현재 상황에서 재신청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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