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인 일자리 80만개 창출 시점 1년 앞당겨···올 하반기 3만명 추가
정년 지난 고령자 재고용 시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청년 일자리 악영향 우려
전문가들 “세금으로 마련된 일자리뿐···엄중한 상황 판단 필요”

/ 자료=기획재정부,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노인 공공일자리 현황 / 자료=기획재정부,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정부가 노인 일자리 80만개 창출 달성 시점을 2022년에서 2021년으로 1년 앞당기기 위해 올 하반기에만 노인 일자리를 3만개 추가한다. 고용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재정을 통해 쉽게 만들 수 있는 노인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의 초점이 고령 근로자에게 맞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년 일자리 확보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올 하반기에 노인 일자리를 포함해 취약계층 일자리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대상도 늘려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방침이다.

◇노인 단기 일자리로 고용지표 개선 양상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인 일자리는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확대하기로 발표한 공공 일자리 총 9만개 중 64%가 노인 일자리다. 예산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우선 정부는 사회서비스일자리를 올 연말까지 9만5000개 확충하고, 내년에는 5만개 더 늘리기로 했다. 이로써 사회서비스일자리는 올해 15만개, 내년에는 20만개가 생겨난다. 기존 노인 일자리는 오는 2021년까지 총 80만개를 채우기로 했다. 올 하반기에만 노인 일자리 3만개가 추가 공급된다.

올해 고용지표도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5만9000명 증가했는데, 60대 이상이 35만4000명 늘어나 전 연령대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 물론 1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30대와 40대는 각각 7만3000명, 17만7000명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노인 일자리로 인해 고용지표가 개선된 모양새다.

다만 고용지표를 이끌고 있는 노인 일자리는 단기 일자리에 불과했다. 지난 5월 기준 60대 이상에서는 같은 기간 취업자가 59만4000명 증가했지만, 주 36시간 이상 일자리 기준 환산 취업자 수는 36만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풀타임 근로자를 주 36시간으로 보고 있는데, 결국 노인 일자리는 세금으로 투입된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정부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대책으로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확대와 실업자 대상 내일배움카드 개편 등 기존 제도를 답습하고 있다. 단순히 고용지표에 매달리기보다는 청년층과 30~40대 등 핵심 노동계층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지만, 정부는 “노인 일자리 창출이 단순히 숫자 늘리기가 아닌 사회안전망 강화 차원”이라며 해명하고 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민간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고 전반적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방 차관보는 “정부가 일자리 상황이 좋아지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각종 대책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노인 일자리를 포함해 정부가 고용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령화 사회’ 대응 위해 고령자 재고용 방안 마련

여기에 정부가 고령화 추세에 대처하기 위해 정년이 지난 고령자를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고용할 경우 사업주에게 보조금 지급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소득 공백기를 줄이기 위한 방침이지만, 사실상 정년 연장과 비슷한 효과를 보여 오히려 청년 일자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이 60세 이상 고령자 기준 고용률 이상으로 채용을 하면 분기마다 1인당 27만원씩 지급하는 이른바 ‘고령자 고용지원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5840개 업체가 고령자 1만7000명(165억원) 고용에 대한 지원을 받았다. 다만 정부는 정년제도가 없는 기업을 대상으로 했고, 업종도 청소·경비 등 단순 일자리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원 대상을 정년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반 기업으로 확대하고, 수혜 대상도 대폭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60세 이상 근로문화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69만명인 노인 인구는 2025년에 1051만명으로 늘어난다. 노인 인구의 급증은 재정 부담으로 연결되는 만큼 정부는 노인층의 경제활동 지속과 소득 증가 효과를 내기 위해 고령자 재고용 인센티브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퇴직자 재고용은 사회 전반의 퇴직 시기를 늦추고 신규 채용을 꺼리게 하는 등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퇴직자 재고용 부문이 단순 노동이 아닌 공공 부문과 사무직으로 확대될수록 청년 취업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 일자리로 만들어진 수치를 보고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며 “경제의 중심인 30~40대와 청년층의 고용 상황이 나쁜 현실에 대한 엄중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기업의 일자리, 특히 제조업 부문의 고용 상황이 악화되면서 30~40대의 경제 흐름이 흔들리고 있다”며 “정부는 공공 일자리로 고용지표를 개선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고령자로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년 연장 문제와도 맞물려 결국 고령자들을 위한 생계형 일자리가 대거 마련됐다”며 “이는 오히려 일자리 사업보다는 복지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고령층을 사실상 노동력으로 인식하고 연령대별로 맞는 일자리정책을 펴야 하는데 정부가 고용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고령자를 일종의 자본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결국 연령대별로 정확하게 마련된 일자리정책이 없는 만큼, 고용 방면에서 더 여려움을 겪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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