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중국의 유혹’ 배터리업계···韓 종사자들 “환상은 금물”
  • 김도현 기자(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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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제안 이면에 도사린 리스크 주의 필요···“근속 짧아 불안, 기술만 뺏기고 추방”
“中 제안, 광범위한 것 맞지만 위협적이지 않아···LG화학·SK이노 법적공방이 그 증거”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막대한 연봉과 각종 복지혜택 등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무기 삼아 한국 인재 스카우트 열전에 나선 모양새다. 한동안 소극적이던 업체들이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분쟁 등으로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틈 타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인데, 제안의 당사자인 국내 인재들은 “환상은 금물”이라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4일 화학 및 헤드헌팅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의 접근은 ‘은밀히’ 그리고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사저널e가 접촉한 복수의 헤드헌팅업체 관계자들도 “중국 업체의 의뢰를 받은 후 움직임이 감지되는 곳들이 몇 있지만 정확히 특정 짓기 힘들다”며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의뢰를 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치밀한 사전 조사 끝에 이뤄지는 양상이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주요 업체 구성원 중 특정 직원을 대상으로 회유가 이어진다. 연봉의 2~3배를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울러 가족들과의 이민 및 자녀의 국제학교 진학 등을 알아봐 준다. 직책으로는 연구직 출신을, 재직 기간은 10년 차 이상을 선호한다.

제안의 당사자가 되거나 그들의 곁에서 근무하는 현업 종사자들은 “흔들릴 순 있으나 파격적인 제안에 비해 시큰둥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과거 이 같은 제안을 받고 흔쾌히 중국행을 결정한 이들의 말로를 지켜봤거나 전해들은 이들 사이에서 중국행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내 업계 전반에 확산되면서 경계심이 대두된 연유에서다.

모 배터리 생산업체에서 8년 차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A씨는 “최근 2년 새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자리를 옮기며 양측 간 국내외 소송 전으로 비화됐는데, 그들 중 중국행 제의를 받았던 이들이 없었겠느냐”면서 “적을 옮긴 이유로 두 회사 연봉 격차가 꼽히기도 했는데, 아마 연봉만을 따졌을 땐 중국 측 제안 액수가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업계 내에서 ‘중국행에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는 조언이 자주 들리곤 하는데, 그건 중국행을 선택한 선배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중국 업체가) 높은 연봉을 주는 대신 기술 이전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곧바로 내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근속 기간이 짧은 것으로 알고 있어, 근속년수보다 앞으로 근속하게 될 기간이 길다고 판단하는 직원들 입장에선 당연히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타 업체에서 근무하는 B씨는 “직장 동기·동료들은 물론 업계 종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신저 오픈대화방에서도 중국 업계의 스카우트 제의 얘기가 곧잘 회자되곤 한다”면서 “팽당해도 괜찮을, 은퇴를 고민할 시점인 최소 부장 이상급 정도가 됐을 때 단기간의 이득을 위해 이직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공감대를 얻는 편”이라 소개했다.

또 “겉으로 드러난 금액은 커 보이지만 계산기를 잘 두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세금과 각종 생활비 및 교육·양육비 등을 감안하면 연봉의 2배를 제시받으면 오히려 손해며, 적어도 4배 이상의 연봉을 제시받았을 때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B씨는 오픈대화방에 올라온 사례 하나를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 업체로 이직한 배터리업체 관계자가 현지 근무 1년 만에 중국 정부로부터 추방당했다는 사연이었다. 회식 자리를 가진 뒤 술에 취해 잠든 다음 한 호텔방에서 깨게 됐는데, 낯선 여인과 공안이 함께 있어 성매매 등의 혐의를 받게 된 것이 추방의 이유였다.

해당 사례는 400여 명이 참여한 대화방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결국 그는 지식·노하우만 업체에 뺏긴 꼴이 됐으며, 추방된 탓에 약속된 연봉 수령 역시 힘들었을 것으로 업계 종사자들은 내다봤다. 대화방은 소정의 절차에 의해 소속만 확인한 채 익명으로 진행된다. 당연히 해당 사례가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했다.

다만 이 사례를 두고 대화방 참여자들은 “유사 사례가 많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시사저널e가 만난 배터리업계 종사자 C씨도 이 대화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정보공유 차원에서 가입했다가 최근 탈퇴했다고 한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수백 건의 메시지가 쌓여 있어 쉽사리 대화에 끼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탈퇴 이유였다.

그는 “참여자들의 대화 수준 등을 감안했을 때 대다수가 동종업계 종사자”라고 말했다. 대화 내용에 등장한 사례들 역시 흔히 접할 수 있는 얘기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중국의 국내 배터리업체들의 인재 빼가기가 우려할 만한 수준을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달콤한 유혹 이면에 도사린 위협에 대한 인식이 업계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이달 초 발표한 올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누적 시장점유율(5월 말 기준)을 보면 상위 10개 업체 중 △CATL(1위) △비야디(BYD·3위) △AESC(5위) △거쉬안(Guoxuan·6위) △파라시스(Farasis·10위) 등 5개가 중국 업체다. 일본의 경우 파나소닉과 PEVE가 각각 2·8위를 차지했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주요 업체들이 각각 4·6·9위에 올랐다.

김도현 기자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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