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보험 마케팅 열 올리던 보험사, 보험금 폭탄 우려

치매보험 보유계약 추이./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치매보험 보유계약 추이./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촬영(MRI)에 이상이 없을 경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었던 치매보험 규정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하고 나섰다. MRI나 CT 검사 결과가 정상이어도 전문의의 치매 진단을 통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상품 약관을 고치라고 결정했다. 치매보험 마케팅에 열 올리던 보험사들은 뒤늦게 ‘보험금 폭탄’을 우려하고 있다.

3일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날 이 같은 내용의 ‘치매 진단 기준 개선안’을 마련하고 보험사들에게 약관 변경을 권고했다.

앞서 보험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가입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경증 치매에도 수천만원의 보험금을 주겠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보험업계에서 치매보험을 놓고 ‘과열 경쟁’ 조짐이 나타나면서 손해율 악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실제로 2017년 31만5000건에 불과했던 치매보험 계약 건수는 지난해 60만1000건으로 2배가량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는 1월에서 3월 사이에만 87만7000건의 신규 계약이 발생했으며 누적 가입 건수는 377만건에 달한다.

금감원은 이달 중 보험사에 약관 변경을 권고하고, 오는 10월부터는 새 약관을 반영한 치매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과거 경증치매보험에 가입한 사람에게도 바뀐 약관 조항을 소급 적용하기로 하면서 기존에 가입한 377만건에도 같은 조건이 적용될 방침이다.

일부 보험사는 경증 치매 보장을 확대하면서도 ‘치매 진단은 CT·MRI 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기준을 근거로 CT와 MRI 등 뇌영상검사 결과에서 치매 소견이 나와야만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경증 치매는 뇌영상검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작 MRI나 CT상 이상 소견이 없을 경우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컸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치매보험의 약관상 치매 진단 기준을 ‘뇌영상검사(CT·MRI) 등 일부 검사에서 치매 소견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른 검사에 의한 종합적인 평가를 기초로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고 수정하기로 했다.

고객 확보를 위해 앞다퉈 경증 치매 보장을 강화하는 등 마케팅에 열을 올리던 보험사는 금융당국의 개선안에 ‘자승자박’한 꼴이 돼버렸다. 개선안에 따라 약관이 변경될 경우 보험금 지출이 대폭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지금까지 판매한 경증 치매 보장 보험 1건당 1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누적 보험금 지급 예상액은 37조7000억원에 달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뇌영상검사로 이상 소견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증 치매에 대해 약관상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만큼 이번 금융당국 개선안은 꼭 필요한 조치다”라면서도 “소비자 보호 취지에 동의해 보험사들도 개선안을 수용했으나 치매보험 중복 가입과 같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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