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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붙는 반도체 통상전쟁···韓日 손익 따져보니
  • 윤시지 기자(sjy0724@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0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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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업계도 사정권" vs "영향 제한적"
日 업계 역풍 예상···수출 규제 장기화 어려울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사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오는 4일부터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장벽을 높인다. 국내 기업은 그동안 일부 첨단 소재 품목에서 수출 절차 간소화 등 우대조치를 받아왔으나, 오는 4일부터 이들 품목을 들여오기 위해서는 약 90일간의 수출 허가 심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전면적 수출 금지는 아니나 단기적으로는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핵심 공급선을 놓치게 된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업체는 물론 정부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앞서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물론 반도체협회 임원들과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어긋난 것으로 간주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업계는 향후 양국 간 통상전쟁이 강대강 구도로 격화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해결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韓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정권…“영향 제한적” 전망도

일본은 소재산업 강국으로, 국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전방 제조사들의 반도체 핵심 공정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소재를 주로 공급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에 대해 수출을 제한한다고 밝힌 3개 품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리지스트, 에칭가스다. 당초 이들 소재 품목은 한국 수출에서 포괄적 허가 대상이었으나, 이번 조치로 인해 오는 4일부터 개별적으로 수출 허가 심사를 받게 된다. 수출 허가 심사 기간만 약 90일이 소요돼,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로 인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국산화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수십년간 노하우와 가격경쟁력을 갖춘 일본 업체를 단기간에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데는 의견이 대부분 일치한다.

반도체 노광 공정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국내 금호석유화학, 동진세미켐, 동우화인켐 등이 생산 중이지만 핵심 레이어엔 일본 제품이 쓰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플렉시블 OLED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일본 스미토모화학 생산 소재를 전량 수입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달 중 출시하는 갤럭시폴드에도 전량 스미토모 물량이 채용됐다. 국내에선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양산 설비를 갖췄지만 지난해 수율 문제로 수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세 가지 품목 중 포토레지스트와 불산은 국내 업체들이 일부 생산할 수 있다고 하지만 품질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는 일본의 원재료를 정제‧재가공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국내 업계에 대한 실질적 타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이 공급 과잉 국면에 진입하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재고를 안정화하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제조사 입장에선 과잉 재고를 소진하고 생산 차질을 빌미로 가격 협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큰손’ 잃는 日 “제재 장기화 어려울 듯”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을 두고 업계에선 ‘양날의 검’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국의 손익을 따져봤을 때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장기화하기 어렵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일본 소재업계에 대한 역풍은 물론, 일본발 공급 쇼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일본 현지 언론도 정부 대응에 냉담한 반응이다. 일본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대항 조치는 한국의 생산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한국 기업을 대형 고객으로 둔 일본 기업에도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며 "소재 공급이 끊겨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생산에 지장이 생기면 스마트폰·컴퓨터 등 반도체를 이용하는 모든 기기의 생산이 정체돼 혼란이 세계로 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와 유사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자국 기업의 제품과 기술 지원을 배제하도록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 당시에도 미국 반도체 업들 역시 역풍을 우려했다”면서 “일본 기업 역시 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일각에선 사실상 일본의 수출 제재가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일본의 조치가 장기화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한국 메모리 제품을 써야 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애로를 겪기 때문에 향후 미국·중국 등이 일본의 규제 조치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일본 소재 업계에 한국은 큰 고객이다. 간단히 말하면 일본 기업은 불편하지 않게 팔고 싶고, 우리 기업은 불편하지 않게 사길 원하는데 일본 정부가 불편하게 만든 것”이라며 “사실상 양국 간 정치 문제기 때문에 양국 기업은 전망 조차 내다볼 수 없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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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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