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언급한 시진핑 주석···중국 현지선 ‘한국 압박’ 징후
비자 발급 ‘된서리’···중국 여행 사이트에서는 ‘롯데’ 관련 키워드 검색 불가
中 외교부 “무역전쟁과 관련 없다···여타 국가에도 공통 적용되는 것” 주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를 다시 공식 제기하면서 2년 전 사드 갈등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를 다시 공식 제기하면서 2년 전 사드 갈등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를 다시 공식 제기하면서, 한·중 양국이 2년 전 사드 갈등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역전쟁을 벌여온 미국과 중국이 일시적 휴전을 맺은 가운데, 중국이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드 카드’로 한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던 미국과 중국은 무역협상을 재개키로 합의했다. 앞서 지난달 9~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고위급 무역협상이 이른바 ‘노 딜(no deal)’로 끝난 지 한 달 반 만이다.

미·중 양국이 무역전쟁에 대해 일시적 휴전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세계 경제계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번 합의가 협상 재개에만 국한돼 있어 무역전쟁의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사드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1일 중국 베이징 시내에선 지난해 7월 이후 한국 기업 광고판 120여 개가 사전 통보 없이 철거됐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한국인 상용(비즈니스) 비자에 대한 발급 기준도 강화한 바 있다.

청와대는 지난 27일 한·중 정상회담 이후 기자들과 만나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사드와 관련한 해결 방안이 검토되길 바란다”는 언급을 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사드 관련 발언을 꺼내자 문 대통령은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응수했다.

같은 날 중국 관영 CCTV는 “한국 측이 양국 간의 ‘유관 문제’를 계속해서 중시하고 적절히 처리하길 바란다”는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했다. ‘유관 문제’라며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사드 문제가 언급됐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CCTV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사드 관련 언급에 앞서 “한·중 협력은 완전히 호혜 공영으로 외부 압력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말을 꺼냈다. 여기서 외부 압력이란 차세대 5G 이동통신 사업에서 화웨이 배제를 요구하는 등 반(反)중 전선에 한국을 동참시키려는 미국의 압박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가 선행되면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는 구체적 언급은 아니고, 같이 연동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드와 비핵화는 선후 관계가 아니’며 “한·중 정상이 해결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나눈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2일 기자가 직접 중국 여행사 사이트 시에청에 롯데면세점(위)과 신라면세점(아래)을 검색해봤다. / 사진=중국 여행사이트 시에청 캡처
2일 기자가 직접 중국 여행사 사이트 시에청(携程·c-trip)에 롯데면세점(위)과 신라면세점(아래)을 검색해봤다.
/ 사진=중국 여행사이트 시에청 캡처

◇한국인 비자 발급 까다로워지고 ‘롯데’ 검색 안 돼

기자는 2일 직접 중국 여행사 사이트 시에청(携程·c-trip)에 ‘롯데’ 관련 키워드를 직접 검색해 봤다. ‘롯데월드’를 검색할 경우 롯데월드는 검색조차 안 되고, 오히려 롯데월드 주변에 있는 올림픽공원을 소개하는 글로 대체됐다.

면세점 역시 마찬가지다. 신라면세점, 한화 갤러리아면세점, 두타면세점(두산)의 경우 자세한 위치 소개는 물론 각종 할인권 다운로드도 가능했지만, 롯데면세점은 아예 검색 자체가 안 된다. 롯데면세점·롯데월드 등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하나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데, 중국 1위 여행사가 이례적으로 한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씨트립 외에 취나얼, 투니우 등 중국 다른 여행사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지난 1일 중국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한국 기업의 광고판이 한밤중에 기습 철거되기도 했다. 베이징시 산하 공기업이 동원한 300~400명의 철거반이 나서 창안제 동서쪽에 남아 있던 삼성·현대차 광고판 겸 버스 정류장 120여 개를 모두 철거했다.

이 광고판은 한국의 옥외광고 기업이 수십억원을 들여 시설 투자해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1차로 70여 개가 철거된 데 이어, 지난달 29일 나머지 광고판이 모두 철거된 것이다. 사전 통보나 보상 대책에 대한 통지는 물론, 당국의 설명조차 전혀 없었다.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보상 문제 해결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중국 당국이 의견을 전달하겠다, 관심을 가지겠다는 반응만 보여 현재로선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은 최근 한국인들의 상용(비즈니스)비자 발급과 심사 요건을 대폭 강화한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비즈니스용 상용비자 발급 시 반드시 명함을 첨부하도록 하고, 기존 친필 서명 대신 도장 날인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중국 방문 비자와 일자는 물론 향후 중국 체류 기간, 세부 일정 등을 하루 단위로 꼼꼼히 기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상용비자는 사업·문화·교육·과학기술 등 교류 목적의 비자로 중국 외교부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의 초청장이 있어야 발급될 수 있다.

20년 이상 중국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해온 강아무개씨(52)는 “꽤 오랜 기간 비자 발급을 했던 터라 비자 발급까지 10일 정도 걸렸는데 서류 심사가 너무 까다로워 발급받을 때까지 계속 초조했다”며 “보통 새학기나 연말, 한국인들이 대거 중국에 몰려들 때 심사 조건을 강화하곤 했지만 이렇게 서류 심사가 까다로웠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 외교부 측은 “중국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요건을 까다롭게 바꾼 것은 무역 갈등이나 반(反)화웨이 움직임,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 등과 모두 무관하다”며 “비자 발급 심사 강화는 한국뿐 아니라 여타 국가에 대해서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며 요구 서류가 특별히 추가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는 “시진핑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굳이 사드 문제를 꺼내 든 이유는 시 주석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다소 미국 편에 서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며 “무역전쟁도 휴전기에 접어든 만큼 한국을 지렛대로 삼기보다는 미· 중 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느 편에도 서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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