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도시’ 외쳤지만 개발 곳곳에서 주민과 갈등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동안 서울시 도시정책의 화두로 ‘재생’을 내세워 왔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지역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사람들의 삶, 고통과 슬픔, 기쁨과 행복 등이 녹아 있는 ‘사람 중심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3선의 재임 기간 동안 수도 없이 강조하다보니 이제는 ‘도시재생=박원순’이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최근 박 시장의 최근 행보는 재생이란 기존 정책기조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사람보다 개발이 더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서울 중심부인 종로·을지로에 위치한 세운상가 일대에서 ‘다시세운;세운상가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작·생산·판매·주거·상업·문화가 하나로 연결된 ‘메이커 시티’(maker city)로 완성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이다.

이에 따라 시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동 175-4번지 일대 43만8585㎡ 부지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고 8개 구역(2, 3, 4, 5, 6-1, 6-2, 6-3, 6-4구역)으로 나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세운상가를 포함한 7개 건물군(세운·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 양쪽으로 업무시설, 오피스텔, 아파트, 호텔 등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그동안 개발을 진행하면서 지역 소유주와 상인들로부터 협력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초 서울시는 세운3구역에 위치한 을지면옥·양미옥 등 오래된 점포들을 철거하려다 상인 반발에 부딪혀 사업 추진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 구역에 위치한 독립운동가의 집 등 문화재를 철거해 논란을 빚었다. 서울시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강행했다는 소식에 여론은 들끓었다.

또 현재 철거 이후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공사가 진행 중인 세운 3-1, 4, 5구역에는 주상복합아파트와 정밀가공·인쇄 업체 등이 이주할 아파트형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다. 이에 정밀가공 업종은 소음과 진동이 커서 주거지와 이웃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인쇄업종의 경우 자재의 판매, 유통, 가공, 제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공정인데다 작업 환경의 특성상 아파트형 공장으로 이전이 쉽지 않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동네의 생태계를 크게 뒤바꾸는 사업이라면 지역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먼저다. 하지만 개발에 앞서 서울시의 공청회를 제대로 들어봤다는 상인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갈등이 끊이질 않는 근본적인 이유다. 반발이 커지자 박 시장은 ‘전면 재검토’라는 카드를 내놨다. 오락가락 하는 행정에 이번에는 토지 소유주들의 분통을 샀다.

박 시장은 지금부터라도 ‘전면 재검토’가 아닌 지역 주민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세운개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여러 가지 변수에 부딪힐 것이다. 그때마다 ‘전면 재검토’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재생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사회적으로 공감할대를 형성해야 한다. 박 시장은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3선 서울시장이다. 지금이 그 저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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