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3년 전 결정한 김해신공항 돌연 재검토
사업비 8000억 규모 ‘새만금 신공항’, 주변에 공항만 4곳···경제성 도마 위
지방공항 14곳 중 10곳이 적자···“국가사업 너무 쉽게 봐”

국토교통부와 부산·울산·경남 지자체는 지난 20일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동남권 신공항’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부울경 지자체의 끈질긴 압박에도 입장을 굽히지 않던 국토부가 돌연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에 수천억원의 예산이 드는 공항 건설 사업이 정치공학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정부 부처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초 국토교통부는 김해공항을 확장해 동남권 신공항으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자체장들이 반발하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여기에 힘을 보태면서 기존 결정을 돌연 재검토 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3년 전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가덕도가 다시 신공항 후보권에 오를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이에 수천억원의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공항 건설이 정치공학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방공항은 그동안 지역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단골 소재로 이용돼 왔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며 공항 건설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무안·청주·여수 등의 지방공항들은 연간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면제된 ‘새만금 국제공항’ 역시 벌써부터 경제성 논란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공항 건설이 경제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정치 논리에 따라서만 추진된다면 애꿎은 세금이 낭비됨은 물론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토부, 결정한 ‘김해신공항’ 사업 돌연 재검토···내년 총선을 위한 초석 다지나

21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국토부와 부울경 지자체는 김해신공항의 적정성을 총리실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부울경과 대구·경북 등이 10여 년에 걸쳐 유치 경쟁을 벌여 왔다. 2016년 국토부는 5개 광역단체장들과의 합의를 거쳐 김해공항을 확장해 동남권 신공항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경쟁 후보지였던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결정이 난 이후에도 부울경 지자체들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지속해서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기존 결정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6월 기자간담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국토부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시기는 올 2월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총리실의 사업 검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김해신공항과 관련해)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로 넘겨 결정해야 한다”라면서 “이런 논의를 하느라 다시 사업이 표류하거나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김해신공항과 관련한 의견을 처음으로 표명했다. 이에 부울경 지자체장들은 가덕도 신공항 주장을 다시 밀어붙였고, 국토부는 적정성을 총리실에서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부울경 지자체의 끈질긴 압박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던 국토부로서는 앞으로 있을 공항 정책 추진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대구·경북 정치권과 민간단체가 지난 정책을 뒤집는 행보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한다면 신공항 문제 역시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국민들의 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총선을 겨냥해 각 지역에서 다시 지역민들의 관심이 있는 이슈에 불을 지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해신공항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새만금 국제공항’은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올 1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음으로써 순항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이 크게 우려된다는 점이다. 새만금 국제공항으로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10km 거리에 군산공항과 무안공항, 청주공항, 광주공항 등이 이미 들어서 있다. 권역이 중복되는 만큼 수요가 불투명한 상항이다.

공항 예상 여객 수요 역시 오락가락이다. 전북도는 2030년 402만명을 예상했지만, 국토부는 133만명으로 예측했다. 사업비만 8000억원가량 들어가는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이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뤄지는 ‘표심 달래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거 때마다 단골공약으로 등장···지방공항 14곳 중 10곳, 지난해 1112억원 적자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구 의원들은 적자가 나건 말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왔다. 공항 같은 핵심 SOC는 건설비를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하고 운영은 각 공기업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상당수의 지방공항이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실제 국내 지방공항 14곳 중 10곳에서는 지난해만 11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무안공항의 경우 지난 2010년 69억원 손실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이보다 2배가량 늘어난 138억원의 적자를 냈다. 무안공항은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실세로 꼽히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앞장서 추진한 공항이다. 연간 857만 명(1999년 사업 수립 당시 예측치)에 이를 것이라던 이용객은 지난해에는 54만명에 그쳤다. 한때 폐쇄 논란에 휩싸였던 청주공항 역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 공항이다. 청주공항은 지난해 12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 외 양양(-151억원) 여수(-169억원), 울산(-152억원) 포항(-140억원) 역시 지난해 1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전문가들은 공항 건설이 수천억원의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정치인들이 국가사업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사업성을 따지지 않은 채 정치적으로 추진되면 신공항들 역시 다른 지방공항들처럼 불 꺼진 공항이 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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