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투자 거래처는 경쟁사와 ‘합작’ 드라이브···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의존하던 유럽선 ‘자급자족’ 움직임
삼성SDI “드러내지 않을 뿐 곳곳에 투자 中”···현대차 전기차 배터리 납품 외면과 관련해선 “언급할 게 없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한국과 미국에 각각 소장을 제출하며 기술유출 논란을 부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신경전이 격화되는 등 국내 배터리업계가 유독 소란스런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업계 2위인 삼성SDI가 ‘고요한 행보’를 보이면서 우려의 시선을 받고 있다.

투자 계획 등에서도 경쟁업체들에 비해 다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업계 2위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SDI의 핵심 거래처들이 집중된 유럽에서의 ‘배터리 자급자족’ 움직임과 현대자동차그룹의 견제가 지속된다는 점 등도 눈길을 끄는 요인이다.

21일 관련업계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이른바 ‘배터리 빅3’는 올 4월까지 각각 전기차 배터리 세계시장 누적점유율 10.6%, 3.0%, 1.1%를 기록했다. 국내 업체로 한정해 보면 LG화학이 고지를 선점한 가운데 삼성SDI가 그 뒤를 잇고,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를 추격 중인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판도에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한다.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를 제치고 2위로 뛰어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SK 측은 폭스바겐과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유럽 내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기존 SK이노베이션의 생산기지로 자리 잡은 헝가리 코마콤이 유력한데, 신설 JV공장의 계획 연산량은 16Gwh다.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 코마콤(7.5GWh) △한국 서산(4.7GWh) △중국 창저우(7.5GWh) 등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여기에 현재 △코마콤 2공장(9GWh) △미국 조지아(9.8GWh) 등의 공장을 짓고 있다. 향후 JV를 통해 신설하게 될 공장의 연산능력 등을 견주면 연산 60GWh급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SK 측이 이 같은 연산능력을 갖추게 될 시기는 2022년 이후다. 앞으로도 수년이 소요될 프로젝트다. 삼성SDI가 비슷한 규모, 혹은 그보다 적은 투자만 계속할 경우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업계 내 여론이 역전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조성된 배경에는 그간 삼성SDI가 별다른 투자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21년 중국의 보조금 규제가 완화되고, 유럽 내에서 녹색당이 약진하며 즉각적인 전기차 시장 확대가 점쳐지고 있다”며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서도 주요 업체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다양한 업체들과 JV설립 및 제휴 등을 추진 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 투자 계획 발표 후 경쟁사인 LG화학·SK이노베이션 등에 비해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라며 “두 회사가 법정다툼·신경전·투자확대·현대차수주 등 다방면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며 경쟁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간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 온 시장 내 지위도 위협받은 수 있다”고 시사했다.

삼성에 도전장을 낸 기업은 SK이노베이션뿐만이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독일 정부가 최소 3개 전기차 배터리 컨소시엄에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다수의 고급 완성차 브랜드를 보유한 유럽에서는 배터리를 자급자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60억 유로(약 8조원)가 투입되는 ‘에어버스 배터리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양국의 유관 제조업체 35개사가 40억 유로를, 나머지 금액을 EU(유럽연합)가 지원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한·중·일 3국에 의존하는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유럽 배터리 생산업체들의 관련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이다. 특히 독일을 비롯한 유럽 내 전역에서 녹색정당들의 약진이 계속되면서 관련 투자는 더욱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누적된 기술 격차가 크다”며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오히려 단기적으론 관련 시장이 커질수록 우리 업계에 수혜가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유럽 완성차업계에서 그같은 분위기가 확산될 경우, 유럽 내 산업 발전을 독려한다는 차원에서 한·중·일 3국의 배터리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의 주력 시장은 유럽이다. 주요 거래처로는 BMW·아우디·폭스바겐·재규어·볼보 등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을 거점으로 한 브랜드들이다. 이들 중 폭스바겐은 현재 SK이노베이션과의 JV을 바탕으로 한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볼보는 LG화학과 최근 JV를 설립한 중국 지리(吉利·GEELY)자동차의 자회사다. BMW·아우디 등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앞서 소개된 독일 정부의 배터리 지원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이처럼 삼성SDI가 국내외 시장에서 강한 도전장을 받고 있는 가운데, 내수시장에선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내수시장의 강자 현대자동차그룹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SDI다. 그간 현대차 전기차 배터리 납품은 LG화학이, 기아차 배터리는 SK이노베이션이 납품하는 구도가 고착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현대차의 프리미엄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전기차 모델에 LG화학이 아닌 배터리를 탑재했으나 이 역시 삼성SDI가 아닌 SK이노베이션 제품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에 탑재될 배터리의 사업자 선정을 추진 중이다. 16조원 규모의 사업이다. 경쟁에 뛰어든 업체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두 업체뿐이다.

이 같은 대내외적 도전과 내수에서의 외면 등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삼성SDI 관계자는 “(소극적 행보란 지적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아서 빚어진 오해로 보인다”며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며, 시장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현대차의 외면과 관련해선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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