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진행 속도 OECD국가 대비 빨라···“고령자 고용연장 방안 마련 시급”
기재부 “정년연장 현 시점 필요”···고용부 “현실적 여건 고려해 중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전문가들 “생산인구·취업연령대 청년인구 변화···임금구조 개편 등 종합 대책 세워야”

한국 정년제도 변화 및 정년별 노년 부양비 추이 표. / 자료=통계청, 장래인구추계, 표=이다인 디자이너
한국 정년제도 변화 및 정년별 노년 부양비 추이 표. / 자료=통계청, 장래인구추계, 표=이다인 디자이너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지 3년 만에 정부가 또다시 정년연장 카드를 꺼냈다. 앞선 정년연장에 대한 사후 논의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정년연장 논의가 언급된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 진행 속도, 생산인구 감소 등이 빠른 편에 속해 정년연장을 포함한 고령자 고용연장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가 정년연장에 대해 온도차를 보이고, 정년연장은 청년고용 문제, 세대 간 충돌, 기업 부담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종합적인 검토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기재부, ‘정년연장’ 놓고 미묘한 입장차

정년연장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데는 지난 2월 대법원이 육체노동 가동연령을 65세로 상향하는 취지의 판단을 내리면서부터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사업주는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며 만 60세의 법적 정년을 보장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정년연장에 대해 상호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정년연장이 현 시점에서 필요하다. 논의가 마무리되는 즉시 정부 입장을 제시할 것”이라며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면, 고용노동부는 정년연장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라며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일 “정년 문제, 고령인구 재고용 등 고령화와 관련한 제도적 이슈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임금체계와 고용형태 변화 등 노동시장 제도 변화도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기념총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정년연장을 지금 해야 하느냐 하는 부분은 중장기 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인구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고령자분들이 더 많이, 더 오래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가 오래 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장관은 성급하게 정년연장을 시도하면 청년실업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아직 청년, 즉 에코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몇 년 더 지나야 (증가세가) 해소된다”며 “(정년연장을 하면) 청년 고용이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기업 임금체계가 연공서열이 굉장히 강해 (정년연장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며 “60세 정년을 의무화한 지 2, 3년 됐는데 이게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 등이 배제된 정년연장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홍 부총리는 “향후 10년간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매년 80만명, 10대가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속도는 연간 40만명임을 고려하면 (청년실업 악화) 우려는 완화될 것”이라며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년연장은 시간문제, 핵심은 ‘방법과 시기’

중장기적으로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과 각종 연금 등 재정위기 가능성을 감안하면 정년연장은 시간문제다. 인구 감소가 성장과 재정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늦춰질수록 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17일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를 보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올해 5만5000명(전년 대비)이 줄어들지만 내년에는 감소폭이 23만2000명으로 확대된다. 2024년에는 –33만8000명, 2025년에는 –42만9000명으로 감소 속도가 빨라져 2030년대 초반까지 매년 30만~40만명씩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 통계청이 정년 5세를 가상으로 연장해 분석한 결과, 올해 노년부양비는 현행(20.4명)보다 7.4명 떨어진 13.1명으로 집계됐다. 노년부양비란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인구의 비율로, 한 사회의 고령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통계청은 장래 추계를 통해 2067년에는 부양비가 102.4명까지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일하는 인구보다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다.

문제는 시기와 방법이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의 우려처럼 당장 청년 고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할 경우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더 큰 논란을 빚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도 당장 법을 개정해 정년을 65세로 늘리기보다는 생산인구와 취업연령대 청년인구 변화, 임금구조 개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노동자를 재고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우선 도입해 기업들의 부담 등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정년연장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고령세대의 노동 참여를 활성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고령자 노동시장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높은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열악한 실정”이라며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관행 및 제반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정년연장을 위해선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 실장은 “60세에 가까워질수록 생산성은 낮아지는데 임금은 많이 받는 호봉제가 만연한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쉽지 않다”며 “인센티브 제도만 먼저 도입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정부 지원이 끊기고 고령자를 재고용하는 의무만 남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이달 말로 예고했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는 당정협의가 늦어지면서 7월 초로 일정이 연기됐다. 경제성장률 조정과 정년연장 논의 등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 발표도 덩달아 늦춰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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