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늦더라도 정확하게 보도할 ‘용기’ 필요해

나는 내가 훌륭한 기자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훌륭한 기자란 무엇인지 완벽하게 정의하지도 못했지만, 내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수준인 것쯤은 안다. 하지만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점도 있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따금 기사가 지연돼 “쟤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사가 안 나와”라는 지적을 듣더라도 한편으로 뿌듯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적어도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가 아니라는 칭찬으로 듣고 있다.

얼마 전 제법 굵직한 기사를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제행사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았다는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의 보도자료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다. 이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콜롬비아 경제단체는 그를 초청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이 평소 못마땅했던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조롱했고, 기획사 측의 초청을 주최 측 초청인 것처럼 과대 포장해 보도자료를 냈을 것 같다는 차분한 평가도 있었다.

역시 이 취재의 시작은 왜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 출발했다.

왜 콜롬비아 경제단체는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가, 2심 중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을 국제행사 기조연설자로 초청했을까? 왜 이 전 대통령은 보석 조건 완화 신청서를 접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같은 보도자료를 냈을까?

왜 콜롬비아 경제단체 홈페이지에는 재단이 설명한 국제행사 일정이 확인되지 않을까? 콜롬비아 경제단체가 이 전 대통령을 기조연설자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재단 측 설명도 의문이었다. 초청장에 담기엔 낯 뜨거운 형용사였다.

의문은 새로운 것(new things)을 가져왔다. 말 그대로 뉴스(news)가 됐다. 기사를 보고 한 독자는 “진실이 의심으로부터 나왔다”라고 평가했다. 뿌듯했다.

사실 이번 취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가지 질문을 정리해 콜롬비아 경제단체 측 언론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게 전부였다. 이 전 대통령 측 반박을 듣기위해 재단 측에 연락도 필요했다. 이제 막 기자생활을 시작한 수습기자도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받아쓰기만 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을 좀 더 차분하게 고민하게 됐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의 ‘워딩’은 기록으로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따옴표 저널리즘이 무작정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종종 일방적인 주장이나 허위사실이 확대 재생산되기도 한다. 속보 경쟁 속에서 이러한 부작용은 악화된다. 재단 측 주장이 그대로 보도 된 이번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다.

수많은 따옴표 저널리즘을 보면서 나는 한국 언론이 조금 천천히 가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보도가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용기를 갖기 위해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무엇이 이것을 막고 있는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나는 이렇게 기사 지연에 핑계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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