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강남N타워에 문 연 '푸드X인공지능' 레스토랑 레귤러식스
로봇이 서빙하고 핸드드립···AI가 관리한 식재료 먹어볼 수 있는 기회
침체한 외식시장 미래 모델로 의미 지녀

AI(인공지능)가 키운 상추와 고기를 파는 식당이 생겼다. 국내 파인다이닝 1번지인 서울 강남 한복판에 말이다. 14일 문을 연 레귤러식스가 그곳이다. 이곳을 만든 이여영 월향 대표는 "맛과 재미와 의미의 밸런스가 이뤄진 곳을 만들고 싶었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푸드와 기술이 잘 만날 때 한식이 일식 다음의 시장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푸드X기술' 레스토랑 레귤러식스의 한 줄 요약이다. 

레귤러식스는 6개의 식당이 모여 하나의 식당이 된 곳이다. 육그램과 월향이 합심해 만들었다. 이곳엔 퓨전한식당 ‘월향’, 돼지고기구이를 파는 ‘산방돼지’, 횟집 ‘조선횟집’, 냉면 파는 ‘평화옥’, 로봇까페 ‘라운지엑스’, 정육점 ‘육그램 AI 에이징룸’, VIP 공간 ‘알커브’가 입점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푸드코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로봇이 움직이고 AI가 재배한 식재료가 운반되고 있다. 

◇ 로봇이 내려주는 커피

주전자를 잡고 있는 게 로봇 바리스타의 '손'이다. 로봇 바리스타는 물줄기의 세기와 속도, 쉬는 타이밍까지 일반 바리스타가 입력해놓은 그대로를 실행한다. / 사진=박지호기자

라운지엑스에 가면 관절을 가진 로봇이 바리스타의 팔처럼 움직이며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어 준다. 인간 바리스타가 세 종류의 원두를 정량에 맞춰 세팅해 놓고 버튼을 누르면 로봇 바리스타가 원두를 가져다 드리퍼 위의 페이퍼에 쏟는다. 이후 적정 온도의 물이 든 주전자를 옮겨 그 위에 붓는다. 원두에 따라 드립 방식이 달라지는데 과일 풍미를 가진 원두의 경우 물줄기를 세게, 그리고 속도를 빨리해 강한 자극을 줘야 한다. 묵직하고 다크한 향의 원두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드립했다가는 맛이 오히려 약해진다고 한다. 

원두의 특색에 맞춰 드립 방식을 달리해야 하는 일을 로봇 바리스타가 해낸다. 로봇과 인간이 협업하는 카페인 것이다. 라운지엑스 바리스타는 "로봇이 정확히 한 사람 몫을 해낸다. 로봇을 가동시켜두고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기술자 시각으로 보면 특별한 기술이 아닐 수 있지만 카페를 찾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는 놀라운 광경이다. 재미와 의미의 밸런스가 맞는 순간이다. 

빵을 정수리에 이고 다니는 '빵셔틀' 로봇 서버도 돌아다닌다. 모두 일반 식당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 AI가 키우고 AI가 에이징한 식재료

레귤러식스에서 제공되는 상추는 AI가 키우고 재배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 이후 AI가 생장 과정을 이미지로 인식해 작물이 아프거나 성장이 더딘 경우 액상 형태의 영양분을 주입한다.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도 각 작물별 특징을 파악해 더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다.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키워진 상추가 식탁에 오른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고기에 부착된 방수 센서를 통해 온도·습도를 관리한다. 고기가 가장 맛있게 무르익는 시간도 AI가 제어한다. 황성재 육그램 대표는 "에이징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데이터화된 적은 없었다. 그간 개인의 노하우에만 의존해 왔다"고 말했다. 

레귤러식스 육그램의 AI 에이징룸. /사진=육그램
레귤러식스 육그램의 AI 에이징룸. / 사진=육그램

육그램은 지난 수개월 동안 전국에 있는 에이징 장인들의 노하우들을 모아 데이터화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기를 숙성시키는 냉장고와 컴퓨터를 연동해 에이징을 컨트롤한다. 현재는 카메라를 통해 고기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르면 7~8월 중에 AI 에이징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다. 

결제 방식도 남다르다. 해먹남녀로 유명한 힌트체인은 레귤러식스의 음식 리뷰 관리 및 암호화폐 결제를 지원한다. 소비자가 해먹남녀 3.0 에 리뷰를 올리면 이에 대한 대가로 힌트파워가 제공된다. 힌트파워를 암호화폐 힌트토큰으로 전환해 레귤러식스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일반인에겐 아직은 낯선 결제 방식이지만 이미 '토큰이코노미' 상용화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일고 있다. 이 역시 지금 당장 상용화되기는 어렵고 올해 하반기에 본격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지웅 해먹남녀 대표는 "토큰이 개방형 자산이다 보니 제휴된 가맹처에서 쓸 수도 있고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자산화할 수 있다.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사용자에게 돌려준다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전날 열린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패널들이 동시에 주목한 것은 결국 데이터를 기반(Data Driven)으로 한 외식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외식업계가 현재의 침체를 깨고 다시금 재미있는 산업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식재료를 재배하는 데 가장 최적화된 방식인지, 어떻게 노동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방대한 정보의 사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형 외식기업인 CJ와 SPC가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레귤러식스가 앞서 선보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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