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7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하고 1000만명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봉준호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은 가족 모두가 백수인 한 가난한 가족이 고액 과외로 부자집 식구들과 엮기면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다.

'기생충'은 평단의 호평과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높은 판매율을 유지하고 있어 이 같은 상승세는 딩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디즈니 만화영화를 실사로 만든 '알라딘'이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 변수다. '알라딘' 은 최근 '기생충'을 제치고 다시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알라딘'도 관객 400만명을 넘어 500만명을 향하고 있다. 영화계에선 제2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될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기생충'은 약간의 상영관 갯수의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현재 대략 전국 1500개 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알라딘'이 상영관을 늘린다면 ‘기생충’의 상영관 갯수는 감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8년 말 기준 전국 상영관 개수2939개가 맞다면 국내 전체 상영관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독과점이다. '기생충'이 관객 800만명을 넘어 1000만명을 바라 볼 수 있는 것도 많은 상영관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 '기생충'은 얼마 전 독과점 논란을 불러온 미국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생각나게 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개봉 첫날 무려 전국 2760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 상영관 점유율이 80%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상영관 독점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상영관 독과점을 ‘기생충’이 이어가고 있는 형상이다. 화제의 두 영화가운데 하나는 최근 우리 극장가를 ‘싹쓸이’ 했고, 또 다른 하나도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당연히 적지않은 영화 관람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와 ‘기생충’를 보는 시선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독과점의 잣대가 ‘기생충’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전자가 미국영화이고, 후자가 한국영화이어서 그럴까. 우리 영화에 대한 문화적인 애국심이 은연중에 발현되기 때문에?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프랑스 최고의 칸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영화가 국내에 와서 문화 다양성을 해치는 데 일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우리나라는 상영관과 배급사를 겸하는 CJ·롯데·메가박스 3개 기업이 전국 상영관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 세 기업이 뜻을 맞추면 작품성과 무관하게 일정부분 상업적인 성공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벤져스’도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만들었고 ‘기생충’ ‘알라딘’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이들 영화들에게 ‘어떤 조치’를 강제하는 것이 맞을까. 어떤 영화에겐 개입하고 어떤 영화는 모른 체 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독과점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경제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맡겨야 한다는 고전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도 ‘도덕 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독점경제를 경계하고, 적당한 정부 개입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되선 안 된다. 언제부터가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단순한 문화상품이 이상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적인 풍토, 지금 여가문화에서 영화의 위상, 우리 국민의 관람 행태와 정부 정책과 영화인의 사고, 정치적인 환경 등 국내의 특수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프랑스, 미국 등의 영화산업과 비교해, 차용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특수성이란,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독과점으로 논란됐지만 ‘기생충’엔  그 언급은 없다는 것이고, 있어도 종영 후에 있거나 아예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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