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폐쇄에 이어 종이통장 폐지까지···디지털뱅킹에 소외된 노년층

수습기자 시절 IT 부서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 일이다. 패스트푸드점 내 무인자동화 기기 도입에 따른 노인의 디지털 소외 현상을 취재하기 위해 추운 겨울날 종로 일대를 돌아다녔었다. 키오스크를 마주한 노인들에겐 햄버거 하나를 주문해 먹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무인주문기가 어렵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편리한 기기가 그들에겐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인 셈이었다.

노인들이 마주한 디지털 장벽은 비단 패스트푸드점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디지털 소외 현상은 은행권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나날이 줄어드는 은행 점포수와 종이통장 폐지 수순이 단적인 예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뱅킹이 금융 생활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으면서 면대면 종이통장 등 ‘실물’에 익숙한 고령층에게는 ‘금융장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점포(지점·출장소 포함) 수는 총 3548개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개 감소했다. 4대 시중은행의 점포는 2015년 12월 말 4000개 밑으로 그 숫자가 떨어진 이후 매년 100여개씩 감소하는 추세다.

종이통장 축소 흐름은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은행에선 신규 계좌 개설 시 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내년 9월에는 이런 조치가 더욱 확대된다. 금융감독원은 2020년 9월부터 종이통장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가의 일부를 부과시키는 유료화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 

수십 년간 은행에 방문해 면대면으로 금융 서비스를 받고 종이통장을 이용해온 고령층에게는 이런 흐름이 낯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모바일뱅킹 서비스 이용률을 살펴보면 2, 30대의 이용률은 80% 내외인 반면 60대는 18%대, 70대 이상은 6%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노년들은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익숙지 않고 은행은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양한 만큼 앱의 메뉴도 많고 글씨도 너무 작아서 고령층이 이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우려를 인지한 듯 종이통장 유료화 방안에 있어서 60대 이상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비용을 면제시킨다는 예외를 뒀다. 그러나 문제는 모바일뱅킹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우대이율 및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이 이를 누리지 못하는 노인들에겐 상대적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 지점 감소와 종이통장 축소 흐름은 핀테크 확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서 고령층이 배제 받는 현실까지 당연한 일로 넘어갈 수는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늙는다. 노인들만의 일이라 생각되던 문제들이 곧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역시 향후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어떤 금융장벽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 인용되기도 했던 미국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Theodore Roethke)의 말이다. 고령층의 금융소외 현상 역시 단순히 노인의 무지에 그 원인을 돌려선 안 된다. 고령층 역시 혁신금융의 수혜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금융권과 당국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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