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통장 발급 유료화에 이어 종이영수증 발행 의무 완화
종이 퇴출에 따라 고령층 ‘금융장벽’ 더욱 높아져

금융권의 디지털 혁신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종이통장 감축에 이어 종이영수증 역시 멸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고령층의 금융장벽 우려가 제기된다./사진=셔터스톡
금융권의 디지털 혁신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종이통장 감축에 이어 종이영수증 역시 멸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고령층의 금융장벽 우려가 제기된다./사진=셔터스톡

금융권의 디지털 혁신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종이통장 감축에 이어 종이영수증 역시 멸종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비대면 금융거래 활성화와 비용 절감 유인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지만 모바일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의 금융장벽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2020년 9월부터 종이통장 발급 유료화…종이영수증도 퇴출 수순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9월부터 종이통장 발급이 유료화된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5년 7월말 발표한 ‘통장 기반 금융거래 관행 등 혁신 방안’에 따른 조치다. 해당 조치는 종이통장 미발행 혁신 과제 3단계에 해당한다.

앞서 2017년 9월부터 시행된 종이통장 미발행 혁신 과제 2단계에 따라 현재 은행에선 신규 계좌 개설 시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계좌를 만들 때 직원이 종이통장 발급 여부를 고객에게 묻게 돼 있으며, 고객이 60세 이상일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종이통장을 자동 발급한다.

2단계가 진행 중인 현재까지는 이용자가 금융거래기록 관리 등의 사유로 종이통장 발행을 희망할 경우 수수료 없이 종이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3단계가 시행되는 내년 9월부터는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통장 발행에 드는 원가의 일부를 종이통장 발행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조치에 따라 시중은행의 종이통장 발급량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의 종이통장 발급량은 지난해 총 2965만5157개로 사상 처음 3000만개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2012년 5대 은행 체제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은행권은 비용 절감 측면에서 종이통장 감축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미 모바일뱅킹이 대세로 자리 잡아 상당수의 고객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거래내역을 확인하고 있는 만큼 종이통장을 필수로 발급하지 않아도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 입장에서도 종이통장 발급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에서도 종이 퇴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다음달부터 5만원 이하 결제 소비자에게 종이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기로 했다. 카드업황 악화 및 수수료 인하 정책 등으로 비용 감축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선택 발급제’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의도다. 카드사들은 신용카드 영수증의 선택적 발급을 허용하도록 법 개정을 금융당국에 건의한 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인 모습이다. 지난 11일 기획재정부는 카드결제 영수증을 꼭 종이로 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카드 가맹점의 종이 영수증 발행 의무를 완화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 ‘종이 퇴출’ 잇따르면서 고령층에겐 상대적 불이익

비대면 금융거래가 증가하고 모바일 기반 금융거래가 보편화됨에 따라 종이 퇴출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종이와 같은 실물에 익숙한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에게는 금융장벽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우려를 의식해 내년 9월 이후에도 60세 이상 고객의 경우 종이통장 발급 원가의 일부 부과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종이통장을 발급받는 고객은 금융회사가 무통장 거래를 유도하기 위해 제공하는 우대금리 및 수수료 경감 등의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 없다.

KB국민은행의 ‘KB맑은하늘적금’은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고객에게 우대이율을 제공한다. 우리은행은 통장 실물을 사용하지 않는 인터넷 전용 입출식통장인 ‘우리닷컴통장’ 이용 고객에게 일반 입출금통장보다 연 0.2%포인트 우대한 금리를 제공하며 신한은행 역시 인터넷통장인 ‘쏠편한입출금통장’ 이용 시 인출 및 타행 이체 수수료를 면제하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도 종이통장을 발행받지 않는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종이통장 발급을 선호하는 고령층은 이런 혜택을 받기 어렵다. 디지털 금융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종이통장 폐지가 상대적 불이익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전자통장 이용 고객이나 종이통장을 이용하지 않는 고객에 한해서 우대이율 및 수수료 면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종이통장에 익숙한 고령층에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며 “종이통장 폐지와 관련해 금융 소외계층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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