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설비 모르는 비전문가와 환경단체 등이 제기한 ‘브리더 ’의혹이 철강산업 근간 흔들어

오늘날 ‘악의(惡意)’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태초부터 악했다. 악함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살육이 난무하고 또 그것이 정당화 돼 왔던 역사가 그러지 않았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음을 감안하면 우리의 본능은 우리가 여기는 것보다 잔인했다. 오늘날 기준에 비춰보면, 분명 악했다.

악함을 억누를 수 있던 근본적인 장치는 사회성이었다. 수렵을 거쳐 농경사회에 진입한 인류가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비춰지는 모습’의 중요성이 대두됐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선해 보이려는 의도가 나타난다. 그 의도는 우리의 원초적 악함을 억누르게 했을 것이다.

악의를 억누른 그 마음은 시대를 거듭하며 사회적 시스템으로 정착한 교육을 통해 인지됐다. 교육을 통해 얻은 선해보이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 악함을 누르고, 그것이 원동력이 돼 우리 사회가 지탱돼 왔다. 결국, 이 시대의 악의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철강업계의 화두는 ‘브리더(Bleeder)’다. 브리더는 고로 내 압력을 낮춰 폭발 위험성을 낮추는 안전장치다. 미세먼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환경단체들이 국내 주요 제철소들이 이 브리더를 통해 오염물질을 여과 없이 배출한다고 진정을 제기했다. 관계 당국은 이를 인정해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운영하는 포항·광양·당진제철소 등에 열흘의 조업정지 처분을 내리거나 예고했다.

1조6000억원 규모의 미세먼지 저감 계획을 앞서 발표했던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행정소송도 예고했다. 한국철강협회 차원의 대응도 시사했다. 다만 이처럼 강변하면서도 “정비 과정에서 브리더를 통해 고로 내부 공기를 빼내는 것은 고의적 오염물질 배출이 아닌, 안전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고 항변했다.

환경단체는 이 항변에 대해 “뻔뻔하다”고 일갈했다.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했으면, 반성과 더불어 책임지는 자세가 당연함에도 가동중단에 따른 손실만 걱정한 채 사과 없이 눈앞 잇속만 차린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양쪽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여론의 판가름은 비교적 쉬웠던 눈치였다.

열흘의 고로 중단으로 재가동까지 십 수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폐쇄해야 해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업계의 경제적 논리가 판가름의 주된 이유는 아닌 듯 했다. 철강 양산 중단으로 자동차·조선 등 타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국익의 범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된 이유는 철강업계의 항변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인 듯 했다. 그들이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항변은 ‘변명’이 아닌 진실이었다. 우리보다 환경규제가 엄격한 유럽 등 전 세계 모든 제철소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고로 정비 때, 가스를 배출했다. 환경단체는 ‘불안감’을 내세웠다. 얼마만큼의 오염물질이 내포됐을지 모를 가스가 무단으로 배출됐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비록 자체 측정결과였지만, 협회가 내놓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동시에 협회는 관계당국과 환경단체 등이 입회한 가운데 브리더를 통해 배출된 가스 내 오염물질의 정도를 측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부분 수증기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측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철강업계의 노조들마저 “고로 설비를 모르는 비전문가와 환경단체 등이 제기한 의혹으로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며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다. 노사를 막론하고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다. 비록 자체적이긴 했으나 오염도 측정조사 결과도 공표했다. 그럼에도 행정처분은 거둬들여지지 않았다.

설사 브리더를 통해 배출된 가스의 성분 중 상당수가 오염물질이고, 주변 공기 질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밸브를 여는 것을 그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로 내 압력이 높아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애초부터 브리더는 안전장치다. 이처럼 해결책이 전무한 가운데 조업정지 명령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선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환경에 큰 해가 되는 일이라면,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성공한다면 그것이 곧 세계표준이다. 물론 고로에 정통한 이들이 나서야 한다. 무지하지 않은 이들이 말이다.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간단하다. 미비했던 관련법 혹은 규정 등을 손봐 브리더 관련 정책을 수립하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판가름을 위해 브리더를 통한 배출가스 유해성부터 조사해야 한다.

문제시 돼야 했다면,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님에도 제철소들이 브리더를 통해 무단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했다는 정황이나 증언, 증거 등이 제시됐어야 한다. 단순히 여과장치가 없는 공기배출구라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무지했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규제도 처벌도 좋다. 다만, 무지한 채 행하진 않아야 한다.

의도라 생각진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무지에서 시작된 지적이었을 수 있고, 또 누군가의 무지에서 비롯된 적절치 못한 조치였을지 모른다. 지적이 늘 옳을 순 없으니 말이다. 의도 여부는 관계없다. 그 무지가 악의가 돼 산업의 근간이며, 수십만의 일자리의 존립을 위협하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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