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여성 위해 평생 살아온 위인 영면”···여야 5당, 일제히 애도의 뜻 전해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국민께 감사”···장례위원회, ‘유지’ 공개·오후 2시부터 조문객 맞이
미국 유학 등 엘리트 교육, ‘1세대 여성운동가’로 여권 신장 기여···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조력가’로 큰 역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됐으며 조문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됐으며 조문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여성운동가인 이희호 여사가 11일 향년 97세로 별세하자 애도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도사에서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며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며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강조했다.

여야 5당도 이 여사의 서거 소식에 일제히 애도의 뜻을 전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현대사였다”며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평화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는 새 시대의 희망을 밝히는 거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성지도자로서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서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의 등불을 밝혔던 이희호 여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퍼스트레이디였다”며 “사랑과 헌신, 정의와 인권을 위해 몸 바친 이희호 여사의 삶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모하며,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화해와 협력의 한반도 시대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도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등을 맡았으며 가족법 개정 운동, 혼인신고 의무화 등 사회운동에 헌신했다”며 “민주주의, 여성 그리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리며,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민주의 열망을 온 하늘에 퍼뜨리던 그날을 어이 맞추신 듯, 6월 민주항쟁 32주기 뜻 깊은 날에 소천하셨다. 깊은 애도와 함께 고인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고,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우리 모두는 여사님이 걸었던 여성, 민주주의, 인권, 사랑의 길을 따라 전진하겠다. '이희호'라는 이름은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또한 “정의당은 고인의 위대한 삶을 계승하는 데 노력하겠다”며 “고인의 필생의 신념이었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6.15 공동선언을 계승 실천하고,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평화 협치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애도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여사 장례위원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유지’를 공개했다.

김성재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두 가지 유언 중) 첫째는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두 번째로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말씀하셨다”며 “이 유언을 받들어 변호사 입회하에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유언의 집행에 대한 책임은 김 위원장에게 맡겨졌고, 장례 절차는 유족, 관련 단체들과 의논해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하기로 결정됐다.

또한 장례위원회는 공동 위원장으로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와 권노갑 민주평화당 고문, 집행위원장으로 김 위원장을 확정했고, 이날 오후 2시 유가족들과 함께 조문객 맞이를 시작한다.

한편 지난 3월부터 노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이 여사는 최근 혈압이 떨어지면서 위독한 상황이 이어지며 끝내 숨을 거뒀다.

이 여사는 1922년생으로 이화여고,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 미국 램버스대‧스칼렛대 등을 졸업했다. 이후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를 지냈고, 초대 대한YWCA 총무 등을 역임했다. 1세대 여성운동가로 여권 신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이 여사는 1962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5‧16 쿠테타로 의원직을 잃은 상황이었고,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로 감시‧탄압을 받던 상황이었다.

결혼 이후로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조력가’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망명, 납치, 내란음모 사건, 수감, 가택연금 등 김 전 대통령의 고난을 함께 했고, 국제적 구명운동, 양심수 석방운동 등을 벌여 김 전 대통령을 지원했다.

1970년 김 전 대통령이 대선 결심을 한 이후 총 4번의 도전 과정에서 이 여사는 함께 장터‧거리 등을 돌며 적극적인 유세활동을 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1997년부터 5년 동안 ‘퍼스트 레이디’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특히 ‘국민의 정부’ 당시 여성부 출범, 첫 여성 총리(한명숙) 등에 직‧간접적 관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당시 장상 이화여대 총장, 성인숙 청와대 제2부속실장 등과 함께 북측 여성 인사들과 남북 여성좌담회를 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재야와 이른바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고, 지난 2009년부터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대북 사업을 의욕적으로 뒷받침했고, 2011년 12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방북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12월 11일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숙소인 그랜드호텔 발코니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오슬로시민들에게 손을 맞잡고 답례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0년 12월 11일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숙소인 그랜드호텔 발코니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오슬로시민들에게 손을 맞잡고 답례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