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에 협조하지 말 것” 주문···근심 쌓여가는 재계, 사드 보복 롯데 전례 우려
향후에도 양국간 기싸움 반복될 전망···“우리 기업 입장에선 잠재적 리스크로 고착화 될 것”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내 기업들이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경제와 안보 등 다방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의 힘겨루기에 우리 기업들이 또 다시 눈치 보기에 급급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응은 중국이 몇몇 기업들에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미국 현지보도가 바탕이 됐다. 당초 미국은 보안이슈를 부각시키며 중국 화웨이를 압박했다. 이에 중국이 대응에 나선 셈인데, 화웨이와 일부 유관 기업인에게 미국과 협조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는 내용이다. 거래를 끊을 시 응징하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뉴욕타임즈·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주요 기업들을 불렀는데, 우리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두 곳이 포함됐다. 이들은 지난해 각각 전체 매출의 18%와 39%를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40% 안팎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과 SK 모두 해당 보도와 관련해 입장을 묻는 질문에 언급을 삼가고 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서도 ‘노코멘트’다. 업계는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 두 업체가 언급을 삼가는 배경도 중국, 그리고 이를 유심히 지켜보는 미국 등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 재계에서도 이를 유심히 지켜보는 상황이다. 특히, 양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기업들의 근심이 크다. 이 같은 중국의 경고성 메시지가 화웨이와 유관한 기업을 넘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큰 것으로 파악됐다. 더불어 언제까지 우리 기업들이 이들 두 강대국의 다툼에 눈치를 봐야 하겠느냐는 불만도 감지됐다.

재계가 이처럼 큰 불안감을 가진 배경에는 중국 보복의 강도를 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양국 간 갈등이 촉발됐을 당시, 중국 정부는 ‘금한령’을 선언했다. 특히,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에 대한 강도가 컸다. 금한령이 속속 해제된 뒤에도 롯데를 향한 제제는 비교적 근래까지 이어졌다.

양국 모두에서 사업을 영위한다는 한 업체 관계자는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해서 좋은 시장은 아니다”면서 “구매력이 높고 더불어 발전 가능성 등이 좋아야 하는데,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과 미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소개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대안’이지 주력이 될 수 없음을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업적 측면에서 여러 리스크들을 당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임엔 분명하지만, 이처럼 두 나라의 힘겨루기에 유독 우리 기업들이 휘둘리는 것이 사실”이라며 “중국이 신흥시장으로 분류되던 시절부터 지리적 이점을 앞세워 우리 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비약적 성장을 거둔데 따른 성장통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 고통이 너무 뼈아프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이 같은 지적에 공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어느 곳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국이 군사·외교적으로 맞붙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한 곳이 한반도다”면서 “양 쪽 모두에 친근하게 보이려는 움직임도 한 쪽에선 상대와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 비춰져 부담스럽게 작용해 눈치 보기에 급급할 뿐 대안이 없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시사저널e와 접촉한 복수의 기업들도 이 같은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보였다. 한 목소리로 “고래 등에 낀 새우 처지”라며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양국을 의식한 듯 구체적인 업체명과 신원 등을 익명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부분 현지 법인 및 관계국 주재원 등을 통해 정보수집과 더불어 대응책을 모색하는데 급급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28~29일 양일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서 마주할 예정이다. 대외적으로는 서로에 유화적 모습을 보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온 만큼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 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양국 정상이 합의점을 모색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지만 우리 기업들의 눈치 보기는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면서 “사드 배치 갈등, 화웨이를 둘러싼 신경전, 무역전쟁 등 이름만 달리한 양국 간 자존심 싸움은 향후에도 반복될 것이며, 시기에 따라 온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기업 입장에선 잠재적 리스크로 고착화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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