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더 사용 외엔 방법 없어, 고의배출 아냐···대기에 끼치는 영향도 미미”

일관제철소의 고로 공정 모습 / 사진=셔터스톡
일관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나오는 모습. / 사진=셔터스톡

철강업계가 합심하는 모습이다. 최근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등이 각각 경북도·전남도·충남도 등으로부터 ‘조업 10일 정지’ 행정처분을 받았거나, 이 같은 처분이 예고되자 업계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행정처분은 ‘브리더(Bleeder)’를 둘러싼 논란으로 시작됐다. 브리더는 탱크 등에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내부 압력이 높을 경우, 이를 열어 탱크 내 압력을 낮추는 데 사용된다. 환경단체들은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이를 통해 무단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했다고 문제 삼았고, 관계당국은 이를 받아들여 조업정치 처분을 내렸다.

한국철강협회는 최근 이와 관련한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정책에 깊은 공감을 표하면서도 고로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며 유감의 뜻을 표명함과 동시에 다소 억울한 측면이 강하다고도 시사했다. 특히, 예고된 행정처분이 시행되면 단 열흘의 조업정지에도 수 개월 이상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들며 재가를 요청했다.

쟁점은 △고의로 브리더를 개방했는지 △브리더를 통해 오염물질이 얼마만큼 배출됐는지 △제철소 가동시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등 세 가지다. 철강업계는 포스코가 1조700억원, 현대제철이 5300억원 등의 친환경설비투자 계획을 시행 중이라고 밝히며 정부정책에 협조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이 부분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환경단체는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고의로 오염물질을 배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철강협회 관계자는 “오해다”면서 흔히 용광로라 불리는 고로의 특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제철소는 높이 110m의 거대한 고로 상단에 철광석·유연탄을 투입하고 하단에서 1200℃ 고온·고압의 바람을 불어넣어 쇳물을 만들어 제품을 생산한다. 쇳물의 온도는 1500℃ 안팎이다. 고로는 한 번 가동을 시작하면 가동이 멈출 때까지 쇳물을 생산해낸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연간 6~8회 정기정비를 하게 된다. 환경단체는 이 정비 과정에서 브리더를 개방해 오염물질을 배출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철강협회는 “폭발방지 및 근로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필수적 절차”라고 반박했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정비 시 송풍을 멈추면 고로 내부 압력이 외부 대기 압력보다 낮아져 공기가 고로 내부로 유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로 내부에 스팀(수증기)을 주입해 외부공기 유입을 차단하고, 주입된 수증기와 잔류가스의 안전한 배출을 위해 정비 시 고로 상단의 브리더를 개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세계철강협회(WSA·World Steel Asscociation) 측에 같은 상황에서의 브리더 사용에 문의한 결과, 같은 이유로 전 세계 업체들이 정비 시 이를 개방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브리더를 개방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해결방안이 없으며, 이를 위해 특정한 작업이나 연구를 수행한다는 보고 또한 받은 바 없다고 협회 측이 부연했다”고 알렸다.

두 번째 쟁점은 기술적 한계로 고로 정비과정에서 브리더를 통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수증기와 잔류가스가 대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부분이다. 협회는 “배출가스 중 대부분이 수증기며 고로 내부에 있던 잔류가스가 주는 영향 또한 미미할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성분 측정이 진행 중인 결과에 대해서도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올 1월 1일부터 4개월 간 포항제철소 고로의 브리더 개방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제철소 인근 포항 남구 장흥동·대송면, 북구 장량동, 영일만3일반산업단지 등과 영향을 받지 않는 경북 경주시 성건동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세먼지·일산화탄소·황산화물·질산화물 등 주요 항목이 브리더 개폐 여부와 관계없이 별다른 농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브리더 개방 외에 정비 시 고로 내 가스를 배출할만한 별다른 방법이 전무한 상태서 주변 지역의 대기 질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이번 행정처분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한 셈이다.

반면, 행정처분에 따른 제철소가 입게 될 피해는 막대하다. 업계에 따르면 용광로는 나흘째부터 쇳물이 식어 굳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고로 본체가 균열될 수 있다.

균열 시 복구 및 재가동에 이르기까지 3~6개월 이상 소요된다. 협회는 10일의 조업중지에 따른 재복구 기간을 3개월로 가정했을 때 피해금액을 산출했다. 고로 1기가 통상 3개월 동안 120만톤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3개월 간 가동이 불가할 경우 해당 업체가 입게 되는 매출손실만 8000억원이다. 포스코는 9기의 고로를, 현대제철은 3기의 고로를 운영 중이다.

철강협회 측은 “철강은 국가경제에 많은 이바지를 한 산업의 쌀”이라며 “현재로선 조업정지 후 재가동한다 하더라도 현재 기술로는 브리더를 사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고로 가동이 불가능한 만큼, 이번 처분은 사실 상 국내서 일관제철소 운영 중단이란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아울러 “산업 생태계를 고려하면 철강 감산으로 조선·자동차·가전 등 여러 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여파가 클 것”이라며 “향후 국내외 철강사들과 환경전문가, 엔지니어링사 등과 더불어 브리더 운영과 관련된 다른 기술적 방안을 찾고 새로운 기술을 모으는데 힘을 쓰겠다”며 이번 행정처분을 유예해 줄 것을 관계당국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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