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기념재단, 지난 3일 “아고라 보고타 포럼 기조연설 초청받아” 공개
행사 주최 측 시사저널e에 이 전 대통령 초청 사실 ‘공식 부인’
정확한 사실관계 아닌 ‘과장 공개’ 지적···‘여론 띄우기’ 의혹 등 파문일듯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는 9월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한 국제행사의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이 전 대통령 측이 자진 공개하면서 보석 범위 적절성 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시사저널e 취재 결과, 이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고 지목된 행사 주최 측은 이 전 대통령을 “초청한 적이 없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콜롬비아 보고타 상공회의소는 지난 6일 시사저널e 취재기자에게 보낸 이메일(e-mail) 서면 답변에서 이 전 대통령의 행사 초청을 공식 부인했다. 아드리아나 알바 아르멘타(Adriana Alba A.) 보고타 상공회의소 언론담당관(jefe de prensa) 명의로 온 이 답변에서, 아드리아나 언론담당관은 “보고타 상공회의소가 ‘아고라 보고타 포럼(Foro Agora Bogota)’을 열 계획”이라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이 전 대통령(this person)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MB 측 “보고타 상의가 ‘포럼 기조연설자로 완벽한 사람’ 평가”···보고타 상의는 ‘초청 부인’

앞서 지난 3일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은 ‘아고라 보고타 포럼, 이명박 전 대통령 기조연설자로 초청’이라는 제목의 동정을 홈페이지 등에 게재했다. 재단은 이 글에서 “콜롬비아 보고타 상공회의소 측이 이 전 대통령을 ‘아고라 보고타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초청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본 포럼 기조연설자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포럼 초청이 지난 5월 21일 초청장을 통해 이뤄졌다면서 “초청자 측은 이 전 대통령 측에 보낸 초청장에서 ‘대한민국은 콜롬비아와 같은 국가에 강력한 모범이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재단은 또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16차례 해외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에 초청되어 기조연설 및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고도 덧붙였다.

재단은 특히 “보고타 상공회의소가 ‘지속가능한 도시와 경제성장’ 및 ‘서울과 대한민국으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주제로 이 전 대통령에게 기조연설 및 패널토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이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연설 주제와 역할 등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제행사에 초청을 받은 사실을 이 전 대통령 측인 재단이 스스로 공개하자 논란이 일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비자금 횡령 및 삼성 뇌물 등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약 82억원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 중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현재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주거지는 논현동 자택으로 제한되고, 직계혈족과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접견과 통신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사실상 제한적 보석 상태로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해외 포럼 초청을 두고 일각에서는 논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시사저널e는 재단이 밝힌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했다. 보고타 상공회의소 공식 홈페이지(www.ccb.org.co)를 통해 확인한 언론담당관에게 이메일로 “보고타 상공회의소가 대한민국 17대 대통령(2008~2013)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아고라 보고타 포럼의 연설자(speaker)로 초청한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또 아고라 보고타 포럼의 행사 계획 및 일정 등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단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한 바와 달리, 행사 주최 측인 보고타 상공회의소는 초청 자체가 없었다고 하면서 논란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됐다. 재단의 설명과 보고타 상공회의소의 공식 입장이 배치되면서 그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메일
보고타 상공회의소 언론담당관(jefe de prensa)이 기자에게 보내온 이메일 답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 사진=이메일 캡쳐

◇비공식 라인 통한 접촉 여지 있지만···‘과장 공개’로 논란 불가피 할 듯

일단 재단 측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통상 국제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행사 주최 측 뿐만 아니라 에이전시(기획·대행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연사 섭외가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단 측은 기획사의 이메일을 보고타 상공회의소의 공식 초청장과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메일을 보내온 곳은 기획사다. 이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사에서 보낸 것이다”라며 “상공회의소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하면 행사 담당하는 주무부서가 있을 것이다. 그런 쪽에서 연락이 왔다. 상공회의소에서 연락 온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저희가 이 같은 이메일을 처음 받는 게 아니다. 해당 업체가 이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몇 차례 유사한 요구를 해온 바 있다. 저희가 다른 해외 일정과 겹쳐서 한두차례 참석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e는 발신자의 정확한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도 요구했으나, 재단 관계자는 “내용 중에 외부에 공개하기에 민감한 내용이 있다. 정상들이 국제행사에 참여하거나 강연할 때 여러 가지 조건 등이 같이 전달되는데 저희가 보기에 공개하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있다. 그런 부분이나 기획사까지 알려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재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기획사의 초청 이메일을 공신력있는 현지 기업인단체인 보고타 상공회의소의 공식 초청인 것처럼 언론에 밝히는 것은 엄연히 사실관계가 다르다. 또 기획사가 이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내용을 상공회의소의 공식 평가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공개한 측면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더욱이 이 전 대통령 측은 최근 보석 조건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부정확한 사실 관계를 섣불리 공개해 ‘여론 띄우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수 있다. 지난달 19일 이 전 대통령 측은 서울고법 재판부에 변호인 이외의 접견을 허락하고 통신 제한을 완화해달라는 취지로 보석 조건 변경 신청서를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바 있다.

10년 가량 마이스(MICE) 기획업무에 종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연사 섭외 단계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유사한 초청 레터(letter)를 보내는 일은 흔하게 있는 일이고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면서 “기획사가 보내온 초청 레터를 두고 주최 측의 공식 초청이라고 하는 것은 말장난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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