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측에 아무런 설명 안 해···“의료인에 대한 신뢰 크게 실추”
수술받은 12세 소아환자, 동맥 질환으로 추가 수술···보행장애 추적 관찰 중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한 대학교가 설치해 운영하는 서울 강남 소재 대형 대학병원 소아외과의 의사가 레지던트에게 대리수술을 지시해 면허가 정지되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리수술을 받은 12세 소아환자는 동맥성 질환이 발생해 추가 수술을 받았으며, 6개월간 재활 및 약물치료를 받았다. 또 보행장애가 있는지 추적 관찰을 받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의사 A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12세 소아환자 B는 지난 2016년 12월 31일 복통으로 이 사건이 일어난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가 CT 검사의 예비판독 결과 장염으로 진단을 받고 간단한 약물 처방 후 퇴원했다.

병원 의료진은 CT 검사 최종판독 결과 급성충수염(맹장 끝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긴 질환)이 의심된다고 판단해 2017년 1월 1일 B를 입원하도록 하고 충수절제 수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B의 보호자들은 수술의 내용과 위험성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주치의 및 집도의를 A로 정한 수술동의서 등에 서명했다.

하지만 B의 수술을 진행한 이는 A가 아닌 이 병원 소아외과 소속 레지던트(전공의)인 C였다.

B는 수술 후 다리 저림을 호소했고, 수술 닷새 뒤에는 다리 통증과 부종이 관찰됐다. B는 2017년 1월 7일 바깥 엉덩이 쪽 동맥이 폐쇄되는 증상이 나타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됐다.

B는 대리수술로 요관이 찢어져 요관 관련 추가 수술을 받았고, 소변 주머니를 착용하게 됐다. 또 6개월간 재활 및 약물치료를 받았고, 오른쪽 다리의 보행 장애가 있는지 추적 관찰을 받고 있다.

이후 B의 부모는 A와 C를 사문서 위조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해 혐의 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8년 6월 A에게 ‘이 사건 수술의 주치의 및 집도의로 지정됐음에도 환자 측에 대해 사전 동의나 설명 없이 레지던트에게 대리수술을 하게 했다’며 의료법상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1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의료법상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최대 1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이에 A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처분에 합당한 이유가 없고, 재량권도 일탈·남용됐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는 재판 과정에서 “원고는 이 사건 병원의 유일한 소아외과 전문의로서 모든 소아외과 환자의 주치의 및 집도의가 자동적으로 지정된다. 수술일에 당직이 아니어서 집에 있었는데, 거주지에서 병원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되고 수술 지연으로 환자의 증상이 악화될까 염려돼 레지던트 3년 차인 C에게 수술을 지시한 것이다. 레지던트도 수술에 참여할 자격이 있고, 의료 관행상 주치의가 반드시 수술 현장에 입회해 수술 전반을 지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원고의 지시·감독에 따라 수술을 진행한 이상 수술을 사실상 원고가 시행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A는 또 “이 사건 처분 사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레지던트에게 수술을 지시했고, 원고가 선택진료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C가 수술을 했다고 해서 환자가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는 형사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원고는 병원의 유일한 소아외과 전문의로서 면허가 정지될 경우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재판부는 A의 주장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는 레지던트에게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도록 했을 뿐, 수술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 참석해 그를 지도·감독하지 않았고, 수술이 끝난 후에도 환자의 상태조차 살피지 않았다”며 “원고가 집도하기로 한 수술을 레지던트에게 수행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의료인에 대한 기대, 전문인으로서의 도덕성과 직업윤리 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고 판단했다.

이어 “의료인의 업무는 일반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의료법 규정은 더욱 철저히 준수돼야 하고, 의료인의 준법정신 또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 요구된다”며 “이 사건 행위는 의료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정도가 크다고 평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결과적으로 이 사건 환자는 수술 합병증으로 수개월간 소변 주머니를 착용해야 했으며 추가 수술로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원고가 형사 책임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예후를 직접 확인하는 행위조차 빠뜨린 것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위법성이 크다고 평가돼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한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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