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국가채무비율 40% 강조’에 학자들 “현재 국가채무 걱정할 상황 아냐”
IMF 한국에 확장적 재정정책 권고···전문가 “재정 확대, 재정 안전성에 기여”
공기업 부채 포함 공공부문 부채 감소세

“재정의 더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재정수지가 단기적으로 악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국가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기에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경제·사회의 구조개선을 위한 선투자로 봐야 한다. 포용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세수를 늘려 단기 재정지출을 상쇄할 수 있다.” (5월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40% 논란이 있었다. 대통령께 국가채무가 GDP 대비 40%를 넘어서고 재정수지 적자도 커진다는 점을 보고했다. 확장적 재정 기조를 가져가면서도 재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채무가 늘어나는 것과 재정 적자 수지가 커지는 것 같아 정보를 제공하고 균형감 있는 논의가 있기를 바랐기에 보고를 드린 것이다.” (5월 23일 기자간담회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발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월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추경 등 경제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월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추경 등 경제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간에 재정확대 정책과 이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두고 시각 차이가 있었다.

당시 홍 부총리가 국가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본다는 발언을 했고, 이에 문 대통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후 재정확대 정책과 국가채무비율 40% 지키기 논란은 정치권과 언론, 학계로 옮아갔다.

2018년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35.9%다. 현재 미국은 107%, 일본 220%, OECD 평균 113%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국가채무비율 40%’를 지켜야 한다는 아무런 이론적 근거가 없다며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국가채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재정 확대 정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저성장 속에서 저소득층 지원과 복지 확대를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것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했다.

◇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 근거 없는 주장”

우선 경제학자들은 국가채무비율을 40%선에서 지켜야 한다는 근거가 이론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없다고 했다.

5일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국가채무비율 40%를 지켜야 한다는 근거가 경제학 이론적으로 없다”며 “기재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경기가 어렵고 고실업인 상황에서는 정부가 경기 부양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경제 교과서에 나온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유럽연합의 경우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을 통해 일반정부 부채 기준 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 재정적자 3%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약을 주장한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등 많은 유럽연합 국가들이 이를 지키지 않은 적이 많다”며 “각 국가가 처한 그 때 그 때의 경제 상황에 따라 재정적자와 흑자를 신축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이 재정정책과 관련한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은 지난 5월 28일 ‘좋은나라 이슈페이퍼’를 통해 국가채무비율 40%라는 기준점에 대해 “이는 어떠한 이론적 근거도 제시된 바 없다. 경제학계의 정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며 “국가채무비율 한도의 한 가지 기준은 조세수입으로 상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국가채무, 즉 현시점에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국가채무의 상한이다”고 말했다.

재정여력은 현재 시점에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국가부채 상한과 현재 국가부채의 격차를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0년 한국 재정여력을 GDP의 203%로 분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재정여력을 2014년 GDP의 241%로 추계해 재정이 양호한 국가로 분류했다.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시 시점에서 한국의 재정여력은 국내총생산의 225%로 분석했다. 2018년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35.9%다.

유 원장은 “한국은 자국화폐를 발행하며 만성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채 관리에 별 문제가 없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평가해도 국가채무비율 상승을 염려할 상황과 거리가 멀다”며 “지금은 국가채무를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 IMF “한국 재정확대 해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권고···전문가 “재정 확대, 재정 건전성 도움”

재정확대 정책이 경기 부양과 함께 재정 건전성에도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영철 교수는 “실업자와 노인, 청년을 지원하고 주거정책을 확대하면 성장과 저출산 대응에 도움이 된다.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가는 이러한 지원책을 통해 소비가 늘고 자영업자와 기업 매출에도 기여한다”며 “그러면 세수도 늘어 재정 건전성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이어 “만약 정부가 적극적 재정 정책을 하지 않고 지금의 불황을 방치한다면 실업자가 늘고 조세 수입도 줄어 오히려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고 했다.

유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소극적인 재정정책이다. 정부가 역점을 두었던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으로 큰 변화를 이루기 어렵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수반하기 십상이다”며 “반면 재정 지출을 통한 재분배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정확대에 의한 경기 호전과 저임금 노동공급의 축소를 유도해 시장소득분배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매우 효과적 정책이다. 재정은 뒷짐을 진 채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한 것은 실착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5월 13일 한국 정부에 적극적 재정 정책을 펼칠 것을 권고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정부와의 ‘2019년 연례협의 결과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기적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며 “한국은 추가적인 경기 활성화를 위한 상당한 재정적 여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정부의 지난해 재정지출은 긴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성장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조치를 권고했다.

국제통화기금은 구체적으로 재정정책을 통해 여성·청년층의 고용을 높이고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하라고 조언했다. 또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성장력을 강화하는 구조적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재정 확대가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해친다는 일각의 주장에 조 교수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10년 내내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경기 하강 국면인 지금 1~2년 동안 재정 확대로 대응하자는 것”이라며 “세계적으로도 2008년 이후 재정 확대 정책으로 대응하자는 추세다. 진보적 성격이 아닌 국제통화기금(IMF)도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쓰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채발행을 통한 재정확대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과 정부 부채에 공기업 부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조 교수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저물가, 저금리 시대다. 다른 나라도 재정 확대 정책을 써도 인플레이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상황”이라며 “공기업 부채를 감안한 경우 국제적 기준은 없으나 한국이 높은 상황이 아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때 공기업을 통한 해외자원 개발로 공기업 부채가 늘었으나 박근혜 정부 이후 감소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공부문 부채(D3)는 2014년 이후 줄고 있다. 공공부문 부채는 일반정부 부채(D2)에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더한 것이다. 최근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D3는 GDP 대비 60.4%다. 2016년 말 63.1%, 2015년 말 64.2%, 2014년 말 64.5%다. 2014년 이후 줄었다.

공공부문 부채 추이. / 자료=기획재정부
공공부문 부채 추이. / 자료=기획재정부

한편 한국은행이 국민 계정의 기준연도를 개편하면서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11조원 늘었다. 이에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8.2%에서 35.9%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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