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법원서 승소해도 SK건설 국내법인 재산 강제집행 어려워
한국서 소송 진행은 당사자 특정의 어려움 및 변호사 선임료 걸림돌로 작용
사회적 가치 창출 꾸준히 강조한 최태원 입에 이목 집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말 서울 광진구 광장동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열린 국내 첫 민간축제 '소셜밸류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 SOVAC)' 행사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말 서울 광진구 광장동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열린 국내 첫 민간축제 '소셜밸류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 SOVAC)' 행사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내 시민단체 변호사 일부가 지난해 7월 라오스에서 발생한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 댐 유실사고와 관련 법적 조치를 시사하며 SK건설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사고 피해자가 법적 구제를 받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이에 업계에서는 그룹 총수이자 사회적 기업에 대한 꾸준한 강조와 실천으로 대변돼 온 최태원 SK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빛을 발휘할지 주목하고 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라오스 국민이 취할 비교적 간편한 법적 절차로는 라오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달 라오스 정부 주도하에 구성한 조사위원회에서 사고 원인을 사실상 인재(人災)라고 해석하는 결론을 내린 만큼 승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높다. 다만 재판권은 해당 국가 내에서만 갖기 때문에 SK건설이 대한민국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분석이다. 지난해 말 한국 대법원이 확정판결로 미스비씨중공업 등의 일본 기업에게 강제징용 관련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명했음에도 그 판결로 일본에 있는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아직까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또 사고로 피해를 입은 라오스 유가족이 대한민국 법원에 SK건설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별도의 절차 없이 해당 기업의 국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현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당사자를 특정하는 문제부터 난관으로 작용한다. 법원에 소를 제기하려면 당사자의 성명과 연령, 주소 등을 특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거주 또는 체류하는 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번호나 여권으로 기재하는데 해외에 거주하는 해외국민의 경우 대한민국에서 특정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마땅치 않아서다. 비용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한민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려면 한국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지만 동남아 국가의 소득수준에 비추어 보면 변호사 선임료는 큰 부담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제는 아직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손해액이 동남아 국가의 일용 노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큰 손해배상금이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이유로 라오스 피해 주민의 법적 구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재계 안팎에서는 키맨 최태원 SK회장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수년 간 사회적 가치 창출을 중요시해왔다. 2014년에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책을 출간할 정도다. 지난달에는 사회적 가치 축제 SOVAC 2019에서 자신이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와 영리 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밝히며 그의 인간적 면모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는 해당 사고와 관련해서는 라오스 대사관에 구호금 1000만 달러를 기탁했고, SK건설 임직원은 주민들이 현재 거주하는 캠프의 집을 지어주고 무너진 다리도 복구하는 등의 자원봉사를 해왔다. 최근 라오스 정부가 꾸린 조사위원회 발표를 통해 부실시공을 염두에 두는 결론을 낸 데 대해 SK건설이 즉각 반박했지만, 그간 최태원 회장의 경영행보로 볼 때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상당수 기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성장 일변도의 경영보다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리잡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최태원 SK회장이 이 같은 분위기 조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 측 책임과 역할론 강조도 대두된다. 라오스 정부와의 협상 파트너도 민간기업인 SK건설이 아닌 정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오스에 진출한 국내 법무법인으로는 지난달 임명된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前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잠시 몸담았던 법무법인 지평이 유일하다. 지평 관계자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의뢰된 건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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