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외기업 투자액 1조원···업계 “대기업, 국내 신산업 규제 피해 인공지능·모빌리티·헬스케어 등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
삼성벤처투자,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신사업 스타트업에 자금 투여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등 신산업 스타트업들이 주로 대기업의 선택을 받았다. 특히 삼성벤처투자와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 해외 신사업 스타트업에 자금을 쏟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신산업 규제 탓에 대기업들이 해외 스타트업에 우회 투자해 기술전략을 얻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최근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스타트업 자금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5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벤처투자액 중 비상장 중소·벤처기업 투자금액은 4조7259억원이다. 이 중 해외기업 투자금액은 6926억원으로 조사됐다. 민간벤처투자조합과 신기술투자조합의 벤처투자액을 모두 합한 수치다.

삼성전자는 삼성벤처투자, 삼성넥스트 등 벤처투자전문 자회사를 통해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투자 중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2021년까지 180조원 투자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주로 AI, 디스플레이, 로봇기술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스타트업이다. 삼성벤처투자는 최근 미국 AI 의료로봇 스타트업인 필로헬스 시리즈A 투자, 미국 디스플레이 업체인 나노포토니카, 이스라엘 반도체 스타트업 윌롯, 동남아 인사관리(HR)스타트업 스윙비 등에 투자했다.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공유차량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는 특히 차량호출 스타트업에 3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동남아 최대 차량호출 ‘그랩’에 3000억원가량을, 인도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 ‘올라’에도 35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현대차는 러시아에 차랑공유 스타트업도 직접 설립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LG그룹, 포스코가 각각 벤처투자조합을 통해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 중이다. LG는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투자 중이다. 포스코는 1조원 규모 벤처플랫폼을 구상하고 8000억원을 국내외 스타트업 투자펀드에 출자하겠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대기업들이 국내 규제 탓에 해외 기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모빌리티나 헬스케어 산업의 경우 해외 스타트업의 성장속도가 더 빠르다. 국내 스타트업들의 기술력이 뛰어나도 법망을 피하기 위해 서비스를 쉽게 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사업을 론칭했더라도 규제 샌드박스 신청 등 사전 단계가 오래 걸린다.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지분투자에 이어 해외 스타트업 인수합병(M&A) 빗장을 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간 대기업들은 투자에 비해 소극적인 M&A를 진행했다. 인수할만한 국내 스타트업을 찾기가 힘들고,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한다’는 식의 비판을 의식했다는 이유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국내 스타트업보다 해외 스타트업 M&A 부담이 적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1~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벤처투자조합을 출범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특히 삼성, LG, 현대차만 보더라도 미래먹거리를 유치하기 위해 서로 투자경쟁하고 있다”며 “국내 신사업 스타트업보다 해외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하는 이유는 규제 이슈가 크다. 국내에서는 걸핏하면 규제 때문에 사업을 못한다. 규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사전단계도 오래 걸린다. 해외 스타트업들은 신산업 연구개발과 사업이 편하다. 상대적으로 투자가 용이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대기업은 해외 스타트업 지분투자 외에도 적극적으로 인수에 나설 것”이라며 “전세계적으로 벤처투자액이 늘어나고 있는데 좋은 기술을 보유한 해외 스타트업을 먼저 선점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