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철의 날’ 협회장 자격으로 연단 오른 최정우 회장, 환경개선 노력 적극 피력
정승일 차관 “관행 용인 없다”···산재사고 반복되는 철강업계 향해 강력한 메시지 전달

‘제20회 철의 날’에 참석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한국철강협회 회장 자격으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사진=김도현 기자
‘제20회 철의 날’에 참석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한국철강협회 회장 자격으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사진=김도현 기자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제20회 철의 날’ 기념식에서 뼈 있는 말로 장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4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번 기념식에서 최 회장은 한국철강협회 회장 자격으로 기념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이어 정 차관이 축사를 위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이날 두 사람은 철강업계 이슈를 연상시키고, 마치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품은 발언들을 남겼다.

최 회장은 ‘환경 이슈’와 ‘후판협상’을 염두에 둔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미세먼지로 인해 철강산업에 대한 환경개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우리 업계는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2021년까지 대기방지시설에 1조5000억원 이상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의 배경은 최근 촉발된 ‘브리더(Bleeder) 논란’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브리더는 탱크 등에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일반적으로 탱크 안을 정비하거나 내부 압력이 높을 경우 밸브를 열어 탱크 내 압력을 낮추는 데 사용된다. 포스코·현대제철 등은 관계당국으로부터 브리더를 통해 무단 오염물질을 배출했다고 10일 간의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았다.

업계는 “처분을 받는다 하더라도 브리더를 통해 내부 공기를 배출하는 방법 외에는 탱크 내부의 공기를 빼낼 기술적 대안이 없다”고 지적하며 “폭발 등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압력 조절이 필수적인데, 이 같은 측면에서 브리더는 일종의 안전장치”라 항변하는 상황이다. 이날 행사에 앞서 기자들을 만난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도 “대안이 없어 고민이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특히, 고로 특성상 가동이 중단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고로는 통상 4일까지만 가동중지가 가능하다. 이를 넘어가면 고로 내부 온도가 낮아져 쇳물이 굳게 되는데, 이를 재가동하는 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 포스코는 전국에 총 9기의 고로를 운영 중이다. 현대제철의 고로는 총 3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고로 사용이 불가능해지는데, 한 기를 재건하는 데 2년 안팎이 소요된다”고 부연했다. 포스코·현대제철 등은 전례 없던 이번 행정처분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소송을 통해 브리더를 통해 오염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한 것이 아니라, 기술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 등을 위해 취한 조치임을 해명하겠다는 이야기다.

기념식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최정우 회장은 조업정지 처분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철강협회에서 별도의 입장문을 낼 것”이라고 짧게 답하며 기념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최 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유독 ‘환경’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철강업계가 미세먼지 저감 등 정부의 환경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 최 회장은 후판가격을 놓고 줄다리기 중인 조선업계에도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이날 기념사 중 철강업계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산업 생태계를 강건화하자고 강조하면서 자동차업계와 조선업계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한동안 침체기를 거쳤으나 지난해 선박 수주 1위를 회복하고 친환경 고부가 선박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언급했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올 상반기 후판가격을 놓고 지난해 11월부터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상반기가 끝나갈 시점이 다다르고, 하반기 후판가격 협상이 시작돼야 할 시점을 훌쩍 넘긴 셈이다. 조선업계는 산업 침체를 이유로 후판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왔다. 철강업계는 조선업계의 사정을 충분히 양해해 그간 후판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왔는데, 더 이상은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인상해야 한다고 맞선 상황이다.

당초 이날 축사자로 나서기로 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국무회의로 인해 참석하기 어렵게 되자, 그를 대신해 연단에 오른 정승일 차관의 축사에도 ‘언중유골(言中有骨)’이 숨겨 있었다. 특히,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철강업계의 안전 이슈는 줄곧 제기돼 온 문제다. 올해만 하더라도 지난 2월에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컨베이어벨트 부품을 교체하던 직원들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일에도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폭발사고가 나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피해자 대다수가 협력업체 직원들이어서 ‘위험의 외주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 차관은 “익숙한 것과 작별하지 않고는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없다”며 “철강업계가 변하려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시사했다. 이어 그는 “기존에 이해돼 왔던 관행들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세상”이라며 “특히 안전 등과 관련해 비용이라 생각하지 말고, 선제적 투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축사자로 나선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 사진=김도현 기자
축사자로 나선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 사진=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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