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이 책임지지 않는 계약 방식···정부 '자회사 모델안' 무력화, 공공 서비스 저하 우려

지난 5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출정식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출정식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화 된 33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 개선과 고용 안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 전환 후 노동자들 임금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고려할 경우 사실상 개선 효과가 미미했다. 고용 안정성도 계약서 상 원청의 예산 감소나 미확보, 정부 정책 변화, 자회사의 쟁의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원청은 계약서를 통해 원청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자회사로 미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파견·용역은 노사 및 전문가 협의를 통해 직접고용·자회사 등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전환 방식을 열어 놨다.

3일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시행 후 지금까지 결과를 담은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자료가 처음으로 발표됐다. 이 자료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화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지난 4~5월 사이 조사했다. 이 가운데 자회사 전환 전과 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취합된 기관 수는 33개다.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자료가 수집된 32개 공공기관의 자회사 전환 후 노동자들의 한달 평균임금은 254만7636원으로 자회사 전환 전보다 10.96%(25만1839원) 올랐다. 이 조사는 141개 업무군을 당순 평균했다.

이번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에 따른 자회사 전환 후 임금 인상률 10%는 지난 5월 1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 인상률 약 16%보다 낮았다.

자료=강병원 의원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자료=강병원 의원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이에 대해 “이번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는 각 노동자 인원수가 고려되지 않은 단순평균으로 정확한 평균임금의 변화를 알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자리수 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회사 전환 후 임금 인상률 10%는 처우개선 효과가 미미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자회사 전환 후 이윤, 일반관리비, 부가세 등이 이전의 용역업체 계약과 마찬가지로 책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어긋난다. 가이드라인은 전환 이후의 임금체계에 대해 직종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취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용역업체 이윤 등 절감 재원은 전환 근로자 처우개선에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자회사로 전환한 33개 기관의 경우 이윤, 일반관리비, 부가세 등이 용역업체 계약과 마찬가지로 책정됐다. 33개 기관 중 이윤을 ‘0’으로 계약한 자회사는 두 개 뿐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일반관리비와 이윤율을 일정 비율 두고 있었다. 최소 30개의 계약에서 용역업체 계약 시보다 일반관리비 및 이윤율을 합한 비중이 증가했다.

엄 위원은 “자회사 전환 전후의 임금인상률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전체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일반관리비 및 이윤이 처우개선에 반영되지 않고 자회사와의 계약에 그대로 존재하며 오히려 확대된 계약이 다수 확인된 점, 수의계약을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낙찰률 적용으로 처우개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며 “자회사 전환으로 임금액 자체의 상승이 있지만 이 역시 최저임금이나 물가인상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 인상으로 귀결되었는지 의문이 있다. 자회사 전환의 경우 실질적 내용에 있어 용역업체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 고용 안정성도 불안···'원청 예산 감소·자회사 쟁의' 이유로 계약 해지 조항 둬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화 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로 나타났다. 원청은 자회사와의 계약 자체에 원청 예산 감소, 정부 정책 변화, 자회사 쟁의 등의 이유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다.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원청과 자회사의 계약 자체에서 고용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 조항들이 있었다. 자회사의 책임이 없더라도 원청의 사정 변경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예산의 감소나 미확보, 정부 정책의 변화 등으로 자회사와의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중소기업은행, 중소기업유통센터,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은 자회사의 쟁의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노동 3권에 대한 침해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엄 위원은 “이러한 원청과 자회사 간 계약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으로 문제 해소에 접근할 수도 있겠으나, 모기관과 자회사의 용역계약이라는 형태가 기존의 용역업체와의 계약과 실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여전히 ‘용역계약’이라는 형태로 연계되는 간접고용의 구조라는 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청 공공기관이 책임을 회피하고 자회사로 돌리는 부분도 확인됐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 12월 31일 공공기관들에 배포한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안’과도 어긋난다. 여기에는 ‘자회사의 산업안전, 예산 등 모회사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고 명시됐다.

엄 위원은 “모기관의 책임은 자회사 계약을 통해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의 자회사 모델(안)에서는 자회사의 안전, 예산 등 모회사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다”며 “그러나 오히려 기관들은 계약서상의 문구를 통해 원청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회사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회사가 근로조건 및 근로기준법상 일체의 책임을 지며, 노동쟁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산재보상, 복리후생 등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모기관에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계약상의 문구는 여러 기관에서 발견된다”고 밝혔다.

이에 엄 위원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안했다. 엄 위원은 “생명‧안전에 밀접한 업무, 상시‧지속적 업무 수행 인력의 외부 공급 및 파견, 기타 해당 기관 고유 업무의 외부 위탁으로 인해 서비스의 안정성 하락 및 불완전한 제공이 우려되는 사업으로 사전협의 과정에서 인정되는 경우에는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의 출연, 출자를 금지해야 한다”며 “출연‧출자 후에도 이의 타당성에 대해 재검토를 해야 한다. 또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 개정을 통해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병희 고용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장은 “자회사 전환 방식의 여러 실태에 대한 지적과 정책 대안에 대해 정부의 모델안을 기준으로 해 보완하도록 살펴보고 노력하겠다”며 “원청과 자회사 계약에서 노동3권 침해할 소지에 대해 사실관계를 봐야한다. 실제 그럴 경우 이는 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과장은 “민영화, 외주화,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전달하겠다는 과거의 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구체적 정책까지 마련됐는지는 과제가 아직 남았다”며 “공공기관 내부 문제도 봐야 한다. 공공기관 모기관의 기득권을 자회사 노동자들과 나누지 않고자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특히 대규모 공공기관에서 기존 노조와 기관 입장이 그렇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실현시켜야 하는데 직접고용은 부담되니깐 자회사 전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공성식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은 “기재부가 공기업의 자율성을 말하는데 공기업의 주주는 정부다. 공기업을 만든 건 국민을 위해서다. 이에 기재부의 책임이 있다”며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만들어 퇴직자들을 사장으로 앉히고, 노동자들을 싼 임금으로 부려먹고, 원청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이에 대한 방안을 찾는 것이 기재부의 일이다”고 말했다.

공 국장은 “간접고용 구조와 차별 해소 없는 자회사 전환을 중단하고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자회사 전환의 경우 기준을 마련해 예외적 경우로 최소화해야 한다”며 “인력 공급형 자회사 또는 생명‧안전과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