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직원 취업 제한 조치 과도해”
금융권 재취업 전관 가운데 금감원 출신 ‘최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퇴직 후 재취업 제한규정을 완화해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공식 청구했다./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퇴직 후 재취업 제한규정을 완화해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공식 청구했다./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퇴직 후 재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공식 청구했다. 이에 대해 전관예우와 낙하산 등 인사 문제로 ‘금피아(금감원+마피아)’ 비판을 받는 금감원이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재취업 규정 완화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 금감원 노조 “재취업 제한,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해”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노조는 최근 직원들의 재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공식 청구했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4급 이상 직원부터 퇴직 후 재취업에 제한을 받는 규정이 헌법에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소원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금감원 4급 이상 직원은 퇴직 후 3년, 퇴직 전 5년 동안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유관기관에 재취업할 수 없다. 한국은행·예금보험공사 등 대다수 공공기관이 2급 이상 직원에 대해서만 재취업을 제한하는 것과 비교하면 제한이 더 엄격한 편이다.

통상 5급(조사역)으로 입사해 4급(선임조사역)으로 승진하기까지 평균 5년 가량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감원 직원은 30대 초중반부터 금융권 내 이직이 제한되는 셈이다.

금감원 재직 공무원에 한해 제한 범위가 확대된 조치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서 비롯됐다. 당시 저축은행에 재취업한 금감원 퇴직 직원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금감원 내부의 조직적 부패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금감원 측은 그럼에도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금감원 직원 취업 제한 조치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2012년에도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한 차례 기각된 바 있다.

금감원이 재취업 규제 완화에 계속해서 매달리는 배경에는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이 깔려 있다. 지난 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금감원의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관으로 구성된 공운위원들은 금감원이 향후 5년 내에 3급 이상 상위 직급 인력을 35%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출해 확정함에 따라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공공기관 지정은 피했으나 매년 공운위에 인력 감축 이행 실적을 제출할 것을 약속했다.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취업 제한 규정은 금감원의 인력 축소에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2014년 기준 3700여 개였던 취업 제한 기관이 지금은 1만7000여 개에 달한다”며 “지난번 공공기관 지정 논의와 관련해서도 인력 감축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인데 재취업 퇴로가 없어 제한 규정이 더욱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 전관예우·낙하산 여전한데도 재취업 완화 요구···‘제 배 불리기’ 비판

그러나 여전히 ‘금피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금감원이 전관예우나 낙하산과 같은 고질적 폐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재취업 제한 완화를 거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민간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취임하는 인사 관행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에도 지속돼 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월 발표한 ‘금융당국 출신 인사와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6년 금융회사 재직 임원 중 16.3%가 공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공직 경력자의 대다수인 66.2%가 기재부·금융위원회·금감원·한은 등 금융당국 출신 인사였다.

특히 금감원 출신 인사를 민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영입하면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받을 확률이 16.4%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KDI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를 영입했을 때는 제재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는 실질적 감독권이 금감원에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효과를 방증하듯 금융권에 재취업한 전관 가운데 금감원 출신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KDI가 2017년 12월에 발표한 ‘한국 금융감독 체계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금융회사 임원의 전체 인원 수는 3만1776명이다. 이 중 5대 금융당국(금감원·금융위·기재부·한은·예금보험공사) 출신 임원은 총 4143명으로 전체 임원의 13.0%를 차지했다.

5대 금융당국을 기관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금감원 출신 임원이 10년간 총 1318명으로 전체 임원 중 4.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뒤이어 기재부가 3.6%(1133명), 금융위가 2.4%(738명), 한은이 2.5%(771명)였으며 예보 출신자가 0.6%(183명)으로 5대 금융당국 중 가장 적었다. 금융감독을 직접적으로 집행하는 기관인 금감원 출신 임원이 5대 기관 중 가장 많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금감원의 인사 관행에 명백한 개선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취업 제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제 배 불리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감원 직원을 대상으로 취업 제한이 확대된 근본적 이유는 저축은행 사태 등 금감원 출신 인사의 비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재취업 제한 완화를 논하기 전에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인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데, 금감원은 자신들의 향후 진로에만 관심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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