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도입 2026···게임업계, KCD 등재 지연에 ‘사활’

이미지=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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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er)를 질병 코드로 최종 확정했다. 한국 역시 국제질병분류(ICD)를 기초로 만드는 한국질병분류코드(KCD)에 이를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게임 이용 장애, 다시 말해 게임중독이 국내에 정식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우선 KCD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은 WHO의 ICD와 달리 KCD라는 독자 기준을 갖고 있다. 현재 통계청은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ICD를 기초로 KCD를 5년마다 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7번 개정이 진행됐으며 오는 2020년 8차 개정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WHO가 의결한 ICD-11의 경우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빠르면 9차 개정 시기인 2025년부터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 내용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도입은 2026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특히 WHO의 질병 분류 코드는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이다. 각 회원국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KCD에서는 세부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게임중독 질병 등재와 관련해 향후 진행될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ICD 내용이 KCD에 그대로 넘어오는 경우와, KCD 등재 지연 및 관련 내용이 크게 수정되는 경우다. 

◇게임중독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질병으로 인정되는 경우

ICD 질병중독 정의가 KCD에도 그대로 반영될 경우 산업적인 측면에서 큰 타격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게임산업은 약 14조원 규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후 3년간 게임시장 위축 규모가 최대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업계에서는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셧다운제’를 능가하는 강력한 규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내 게임산업 대표 규제인 셧다운제의 경우 개정 요구에도 불구,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게임산업 전반의 위축과 종사자들의 사기 저하다. 이미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셧다운제 도입 및 게임을 마약, 술,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규정한 소위 ‘4대 중독법’ 발의 이후 사기가 크게 저하된 상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4대 중독법이 한창 시끄러웠을 무렵, 많은 동료들이 게임업계를 떠났다”며 “향후 본격적으로 질병 취급을 받게 되면, 더 많은 종사자들이 이 업계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게임학회장)는 “당장의 매출 감소보다 게임 개발자들의 사기 저하 등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현재 게임이용장애 의심 대상은 전체 이용자 중 3%로 추정된다. 문제는 나머지 97% 역시 잠재적 중독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 교수는 “이제는 국민들이 게임을 바라볼 때, 술이나 담배처럼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난 28일 한국게임개발자협회가 개최한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최훈 한국인디게임협회장은 “게임이 중독물질로 낙인찍히면 업계도 안전한 콘텐츠만 생산할 것”이라며 “결국 게임 유저의 선택도 적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KCD 등재가 연기되거나 내용이 대폭 수정되는 경우

평소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잘 뭉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 게임사별로 이해관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등재와 관련해서는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똘똘 뭉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과거 규제 일변도였던 때와 달리 문화체육관광부가 게임업계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는 상태다. 현재 문체부는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등재를 반대하면서 찬성측인 보건복지부와 날선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ICD개정안은 2022년 1월부터 각국에 권고적 효력을 미치지만, 각국은 국내 절차를 거쳐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며 “우리의 경우에는 설령 도입을 결정한다고 해도 2026년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어 “우리는 몇 년에 걸쳐 각계가 참여하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를 정착시키면서 게임산업을 발전시키는 지혜로운 해결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업계는 아직 KCD 개정까지 남은 시간이 있는 만큼, 결사 항쟁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KCD 등재를 최대한 지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위 교수는 “현재 KCD 등재 유보를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통계청에 확인해보니 그동안 ICD가 KCD에 적용될때 지금처럼 국민들의 의견이 엇갈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하더라”며 “정부가 사회적 합의없이 무리하게 KCD 적용을 진행할 경우 법적인 대응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등재가 연기되거나 관련 내용이 대폭 수정될 경우, 국내 게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이 될 전망이다. 다만 이와 더불어 게임사들의 사회공헌 등 게임 이미지 제고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뒷받침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게임업계가 계속해서 반대한다면, 정부도 쉽게 ICD 내용을 적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률형 아이템 등 여러 부정적인 이슈에 대한 개선 방향 또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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