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질병 정의 후속 조치로 각종 규제 등장 우려

이미지=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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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8일(현지시각)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코드로 최종 확정했다. 이에 국내 게임업계는 결사항쟁에 나선 모양새다. 그동안 각종 규제에 시달려왔던 상황에서 향후 강력한 규제가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2편에 걸쳐 국내 게임 규제 역사와 질병코드 도입 이후 시나리오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게임은 지금 현대판 ‘마녀’가 돼 가고 있다. 아니 마녀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2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출범식에서 나온 선언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 등재에 크게 반발했다.

사실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등재만으로는 당장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한국질병분류코드(KCD) 등재 여부다. KCD는 2020년 고시를 목표로 8차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는 빠르면 9차 개정 시기인 2025년부터나 적용될 예정이다. 아직 시간이 어느정도 남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게임업계가 강력 항의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된 게임 규제···‘셧다운제부터 질병 등재까지’

국내 게임산업은 산업 발전과 더불어 규제와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산업의 경우 정부 도움없이 스스로 성장한 몇 안되는 산업 중 하나다.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속에서 힘들게 버틴 게임업계 입장에서 WHO 게임중독 질병 등재는 업계 전반을 뒤흔들만한 큰 위협이다. 특히 과거 ‘셧다운제’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번 게임중독 질병 등재만은 무조건 막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이유를 내세우며 게임규제 강도를 점차 높여 왔다. 게임규제 역사는 9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청소년 관련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되면서 다양한 규제 정책들이 제기됐다. 여가부는 ‘강제적 셧다운제’라는 강력한 법안을 내놨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 심야시간 게임이용을 차단하는 제도로 지난 2011년 4월 청소년법 개정안에 포함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기에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시간 선택제’까지 시행되며, 업계는 현재 중복 규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시간 선택제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 게임접속시간을 본인이나 부모 요청에 의해 제한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2012년 셧다운제로 인해 중소개발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셧다운제 때문에 게임사는 시스템에 많은 수정을 가해야 한다. 규모가 큰 기업은 하나의 프로세스를 만들면 다른 곳에 적용하면 된다. 그러나 중소 개발사들은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 실시 후,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약 1조1600억원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손인춘 전 의원이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과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인터넷게임중독치유센터를 두고, 인터넷게임중독 치유기금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게임사 매출의 1% 이하를 여성가족부에서 징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은 중독유발지수를 측정해 수치가 높은 게임의 국내 유통을 전면 금지시키고 강제적 셧다운제의 적용 시간 확대를 골자로 한다. 2014년에는 신의진 전 의원이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4대 중독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4대 중독유발물질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 법안 모두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지만 게임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문체부는 2014년 2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통해 고스톱, 포커 등 웹보드게임 이용자의 사용 금액·시간을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했다. 월 결제 한도를 30만원, 1회 베팅 한도를 3만원으로 제한하고, 하루 손실액 10만원 초과 시 24시간 접속을 차단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웹보드게임 업체들은 규제시행 후 매출액이 크게는 7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계속되자, 문체부는 완화된 개정안을 내놨다. 정부는 2016년 3월 월 결제 한도를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높이고 1회 베팅 한도를 5만원으로 올렸다.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안도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원욱, 노웅래, 정우택 의원이 각각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노웅래 의원과 정우택 의원은 2016년 7월 게임에서 확률형아이템의 획득확률 등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원욱 의원은 같은해 10월 획득확률이 10% 미만인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청소년이용불가로 분류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WHO 게임중독 질병 등재···“새로운 규제의 시작 될 것”

게임업계는 WHO 게임중독 질병 등재 이후, 이를 명분삼아 다양한 규제들이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은 “현재 객관적인 측정 도구도 없고 인터넷중독과 게임중독도 구분이 안되는 상태에서 의사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많은 청소년들이 중독으로 낙인 찍힐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게임산업 전반의 위축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게임은 우리나라 전 국민의 70%가 즐기는 대표적인 콘텐츠이자 여가문화”라며 “의학이라는 본인들만의 고유 전문성을 내세워 게임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과잉의료화를 통한 ‘질병 만들기’의 행태로서, 문화콘텐츠에 대한 탄압이자 횡포일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게임업계는 ‘셧다운제’ 이상의 강력한 규제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ICD의 효력이 발생하는 2022년 이전부터 다양한 규제 관련 법안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사실 질병 분류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명분 삼아 다양한 규제들이 나오는 것”이라며 “평소 잘 뭉치지 않는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이렇게 단합한 것 역시 이번 WHO 결정으로 인한 파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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