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상가 점포 수 줄어 대부분 한산···자리 지키다 퇴근하는 상인들 늘어
골목상권·전통시장 살리기 대책 나오지만···지하상가 소상인들은 정책서 ‘소외’

유동인구가 많아 인기를 끌던 서울 주요 지하철 상권이 사라지는 추세다. / 자료=서울교통공사,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유동인구가 많아 인기를 끌던 서울 주요 지하철 상권이 사라지는 추세다.
/ 자료=서울교통공사,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유동인구가 많아 인기를 끌던 서울 주요 지하철 상권이 사라지는 추세다. 2015년 2000개가 넘던 서울 지하철 점포는 4년 새 240개가량 감소했고, 소비자들의 관심도 주춤해졌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로 상권 유지가 양호했던 명동, 종로 등 지하상가도 시장 변화에 따라 한산한 모습이다.

지하상가는 1970~1980년대 차량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대체하는 목적으로 지하도가 생기면서 조성됐다. 지하상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공간 제한으로 가로막힌 지상의 대체 역할을 맡고 통행로에 불과한 지하도의 효율성을 높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쇼핑몰, 복합 쇼핑몰 등과 연계된 일부 지하상점은 큰 영업이익을 내며 자영업자들 생계에 활력을 주고 있다.

◇지하철 점포수 줄고, 소비심리 위축으로 공실 넘쳐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지하철 역사 점포수는 1816개다. 지난 2015년 2055개, 2016년 2035개로 2000여개를 웃돌던 지하상가는 2017년대부터 1000여개를 유지하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을지로 지하상가(을지로 2·3·4구역, 시청광장, 을지로입구 등)의 점포수는 약 450개다. 을지로지역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과 가깝고 사무시설 등이 밀집해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다. 명동 유동인구는 하루 평균 1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오전 기자가 둘러본 회현 지하쇼핑센터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29일 오전 기자가 둘러본 서울 회현 지하쇼핑센터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29일 오전 기자는 회현 지하쇼핑센터, 을지로 지하상가를 둘러봤다. 이날 둘러본 지하상가는 유동인구는 물론 점포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었다.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핫플레이스(인기지역)로 자리 잡은 을지로 지하상가 역시 사람들의 방문이 뜸했다. 그러다보니 매장 곳곳엔 ‘임대문의’, ‘점포정리’ 등의 안내문구가 붙어있거나 아예 문을 닫아 텅 빈 매장도 보였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이야기가 실감나기도 했다.

회현 지하쇼핑센터에서 나와 명동역까지 이어진 길엔 점심시간으로 꽤 번화했지만 인근 백화점, 명동 쇼핑몰이 쇼핑객을 이끌어 지하상가는 여전히 한가했다. 한창 사람들로 붐벼야할 시간에도 지하상가를 찾는 사람이 없자, 일부 상인들은 매장 입구 쪽에 앉아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상권이기보다는 오히려 인근 역을 이어주는 지하보도에 불과했다.

회현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최아무개씨(27)는 “같은 물건을 팔더라도 인터넷이나 다른 대형 쇼핑몰에서 구매하게 된다”며 “지하도는 이동수단으로 여겨지다 보니 자연스레 지하상가도 찾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 ‘높은 임대료 걱정’ 소상공인들 “정부가 지하상가 상인들 고려해줘야”

이날 만난 자영업자들은 지하철 점포가 감소하는 원인으로 임차료 부담을 꼽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서울지역 대형 상가 건물의 월평균 임대료는 ㎡당 5만7890원이다. 50㎡의 소형 점포는 매달 평균 290만원 정도를 내고 있는 셈인데, 지하철 상가는 이보다 3~5배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상권의 몰락과 관계없이 임대료가 오르는 데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임대료를 산정할 때 주변 토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공시지가는 매년 오르는데 이를 기반으로 산정한 임대료도 결국 해마다 오르게 되는 것이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의 경우 2013~2014년 임대료가 현행 임대차보호법의 상승 상한선인 9%씩 올라 상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소공동 지하상가의 임대료도 2012년부터 올해까지 최고 4.5% 올라 한 차례의 동결이나 하락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 산하 시설관리공단 측은 “현행법에 따라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책정하고 있다”며 “공시지가 감정평가에 서울시가 직접 개입할 수 없다. 객관적인 임대료 책정 방식에 의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년 동안 회현 지하상가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한 김아무개씨는 “단골손님이 몇 년째 찾아 장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하상가 대부분은 팔지도 못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다”며 “단골손님으로 영업 유지가 되긴 하는데 (매출은) 예전만 못해서 장사를 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기자가 둘러본 회현 지하상가의 신발가게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29일 오전 기자가 둘러본 회현 지하상가의 신발가게에 신발이 진열돼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그는 할인(sale)이라고 적힌 문구를 점포 유리외벽에 붙여 저렴한 값에 판매하고 있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은 적다고 했다. 또 “가끔 이 자리를 알아보는 상인들은 있는데, 지하상가 자체가 조용하고 사람도 없다보니 입점하겠다는 사람도 다시 마음을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인근에서 악세서리를 판매하는 이아무개씨(44)는 “문을 연 지 2시간이나 됐는데 하나도 못 팔았다”며 “돈이 많은 사람들이 굳이 지하에 와서 장사할 이유는 없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그나마 저렴한 곳을 찾다보니 지하상가에서 점포를 운영하는데 임대료가 높아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정부가 전통시장, 골목시장을 살리겠다며 각종 정책을 쏟아내는데 지하상가 상인들을 위한 정책은 없다”며 “우리는 전통시장, 골목상권 등에 속하지 않는다. 전통시장 대책을 논의할 때 지하상가 상인들도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지하상가 상인들, 전통시장법 예외···주무부처도 달라

실제 지하상가 소상공인들은 국회가 마련한 전통시장법에서 제외돼 특별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의 경우 전통시장법에 따라 정부 지원으로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게돼 부담을 덜게 됐다. 하지만 지하상가 상인들의 상점은 상인들의 자본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면서도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어 전통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서울시 소상공인 주무부처는 경제진흥본부의 소상공인지원과가 맡고 있다. 반면 지하상가 관련 업무 주무부처는 안전총괄본부 보도환경개선과다. 서울시가 지하상가를 상점가가 아닌 보행시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하상가 소상공인들은 골목 상권이나 전통시장을 지원하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상공인은 도·소매업, 음식업, 숙박업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일컫는데 지하상가 업무를 소상공인지원과에서 맡아야 한다면, 서울시 상업 활동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업무가 소상공인지원과에 몰리게 된다”며 “지하상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 최저임금 인상 등을 비롯해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로 소비패턴이 변화하면서 지하철 점포 공실률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다”며 “임대료가 실제 상권 수요에 비해 과장된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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