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전국 지점에서 시범운영
직원들 “점심시간 여유로워 좋다”에 고객들은 “점심시간 쪼개서 왔는데···”

최근 시중은행들이 '점심시간 PC 오프제'를 잇따라 도입하면서 직원들의 워라밸 기대와 고객 불편에 대한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최근 시중은행들이 '점심시간 PC 오프제'를 잇따라 도입하면서 직원들의 워라밸 기대와 고객 불편에 대한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직장인 배아무개씨(29)는 지난주 대출 상담을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오후 4시까지만 문을 여는 은행 영업시간을 감안해 배씨는 식사를 거른 채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을 방문했다. 그러나 마침 대출상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해당 영업점은 ‘점심시간 PC 오프제’를 운영 중인 지점이었다. 결국 배씨는 대출 상담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점심시간대에 업무용 PC가 1시간가량 자동으로 꺼지는 이른바 ‘점심시간 1시간 PC 오프제(Off)제’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영업점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편하게 누릴 수 있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측면에서는 기대가 따르지만, 점심시간 외에 여유가 없는 직장인 등 고객들의 불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13일부터 전국 지점에 점심시간 PC 오프제를 도입해 시범운영 중이다. 국민은행이 시행하는 PC 오프제는 사전에 등록된 중식 1시간 동안 PC를 강제 차단해 휴게시간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전 직원에게 부여된 점심시간은 오전 11시부터 12시지만, 지점별로 11시부터 2시까지 3교대로 점심시간을 운영하기도 한다.

앞서 기업은행은 작년 5월부터 점심시간 PC 오프제를 시범운영해 오고 있다. 기업은행 역시 지난 1월부터 오전 11시~오후2시에 PC를 차단하고 있다.

PC 오프제에 대해 영업점 직원들은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KB국민은행 창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전에는 고객이 몰리거나 대기자가 많을 경우 30분 안에 점심을 빨리 먹고 돌아오기도 했다”며 “PC 오프제가 도입되고 나서 점심시간 1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서 여유롭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고객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장인들의 경우 점심시간을 활용해 은행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장인 배씨는 “은행은 영업시간이 짧아 퇴근하고서는 방문할 수도 없는데 점심시간에 시간을 쪼개서 방문해도 대출상담을 받지 못하거나 오래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점심시간을 매번 쪼개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 B씨는 “공과금 납부일이나 월말 등 고객이 많이 몰리는 날에 직원 자리가 많이 비어 있으면 고객들이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며 “혼잡한 날에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워라밸을 높이면서 고객 불편도 줄이기 위해선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해 창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대비해 직원들의 워라밸을 증진하는 건 좋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고객 민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민원이 늘어나면 결국 은행에 손해”라며 “창구 인원을 보강해서 점심시간에 비는 인력을 메움으로써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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