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업체’에 전달하고 납품 가능성 타진···납품 견적 때도 사용
시정명령·과징금 부과, 법인·관련 임원 2명 검찰 고발 조치도
공급업체 변경 없었음에도 ‘기술유용’ 적용한 사례로 주목

하네스의 일종인 프레임 하네스(frame harness). 현대건설기계 등이 '제3의 업체'에 전달한 도면은 프레임 하네스 등 굴삭기 전체 회로의 8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주요 품목에 관한 도면이었다. /사진제공=공정거래위원회
하네스의 일종인 프레임 하네스(frame harness). 현대건설기계 등이 '제3의 업체'에 전달한 도면은 프레임 하네스 등 굴삭기 전체 회로의 8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주요 품목에 관한 도면이었다. /사진제공=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현대건설기계㈜ 등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억31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관련 임원 2명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처분은 공급업체 변경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기술자료를 ‘제3의 업체’에 제공한 것만으로도 ‘기술유용’에 해당함을 명확히 한 사례로 관심을 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하도급업체의 하네스 관련 기술자료를 유용했다. 하네스는 굴삭기 등 건설장비의 각 부품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부품 상호 간에 전달해 각 부품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전선의 집합체로, 굴삭기 한  대에 약 20개의 하네스가 장착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6년 1월 하네스 구매가격을 낮출 목적으로 납품업체의 다원화‧변경 시도를 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납품업체의 도면을 제3의 하네스 제조업체에 전달해 납품 가능성을 타진하고 납품 견적을 내는 데 사용했다.

현대중공업은 기존 납품업체의 도면은 자신들이 제공한 회로‧라우팅 도면을 ‘하나의 도면’으로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하도급 관계에서 원사업자가 납품할 품목의 사양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하네스 업체들의 도면에는 회로‧라우팅 도면에는 없는, 제작에 필수적인 부품 정보나 작업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정보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제3의 업체’에 견적 제출을 요구하고, 기존 업체에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해 공급처를 변경하는 대신 지난 2016년 4월 공급가를 최대 5%까지 낮춘 사실도 드러났다.

현대건설기계 또한 지난 2017년 7월경 ‘하네스 원가절감을 위한 글로벌 아웃소싱’ 차원에서 새로운 하네스 공급업체를 물색하기로 하고, 3개 하도급업체가 납품하고 있던 총 13개 하네스 품목 도면을 지난 2017년 10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제3의 업체에 전달해 납품 가능성을 타진하고 납품 견적을 내는 데 사용했다.

현대건설기계의 경우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에도 제3의 업체에 도면을 전달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후 현대건설기계는 공급처 변경 관련 절차를 중단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현대건설기계는 경쟁입찰을 통해 낮은 견적가격에 시제품을 구매할 목적으로 지게차용 배터리 충전기, 휠로더 신규 모델용 드라이브 샤프트(엔진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부품), 굴삭기용 유압밸브 시제품 등의 입찰에서 하도급업체의 도면을 제3의 업체에 제공하고 견적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건설기계는 현대중공업과 분할설립(2017년 4월 3일)되기 전후 2차례에 걸쳐 기존 지게차용 배터리 충전기를 납품하고 있던 하도급업체의 납품 승인 도면 7장을 신규 개발업체 2곳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건설기계는 제공된 승인 도면은 납 배터리 충전기에 관한 도면이고, 입찰 품목은 리튬이온 배터리 충전기라며 ‘무관한 품목’의 도면이 실수로 전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기존의 납품업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전류-정전압 충전 방식’을 구현하는 제조업체인 만큼 승인 도면는 동일한 방식을 채택해야만 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충전기 개발에도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기술자료에 해당한다고 봤다.

드라이브 샤프트와 유압밸브 등의 경우에도 현대건설기계는 기존 하도급업체에 시제품 개발을 의뢰‧승인해 완료했지만, 시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해당 품목 개발업체의 도면을 경쟁업체(드라이브 샤프트 1개‧유압밸브 9개 업체)에도 제공하면서 입찰에 참여하도록 했다.

다만 입찰에서는 시제품 개발업체들이 가장 낮은 견적가격을 제출함에 따라 제3의 업체와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10개 사업자에 대한 도면 전달 행위는 궁극적으로 부품 납품가격을 낮추기 위한 ‘기술자료 유용 행위’에 해당된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정당한 사유 없는 기술자료 요구 행위’도 문제가 됐다. 현대건설기계는 하네스 도면을 제3의 업체에 전달하기에 앞서 하네스 납품업체들에게 21톤 굴삭기용 주요 하네스 3개 품목의 도면을 요구해 제출받았다.

현대건설기계는 공정위의 사건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하도급업체에 도면을 제출하도록 요구한 목적을 ‘납품 승인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해당 품목은 이미 하도급업체가 승인받아 납품하고 있었던 품목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술자료 요구 절차와 관련해서도 현대중공업‧현대건설기계는 서면 요구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4월까지 38개 하도급업체들을 대상으로 ‘승인도’라는 부품 제조에 관한 기술자료를 제출받아 보관해 오고 있었지만,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서면을 통한 요구 방식을 취한 경우가 없었다.

현대건설기계 또한 지난 2017년 4월부터 12월까지 24개 하도급업체에 서면 요구 방식을 통해 승인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건설기계가 기술자료 요구 절차를 위반한 해당 품목 수는 각각 396건‧118건 등이었다.

공정위는 “기술유용 행위의 경우 법 위반 금액을 특정하기가 곤란해 현대건설기계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정액 과징금 제도를 활용해 산정되었는데, 공정위는 현대건설기계의 행위를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판단했다”면서 “중소기업의 혁신 유인을 저해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기술유용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3~4개 주요 업종을 대상으로 모니터링과 직권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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