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알파고 아버지 데이비드 하사비스도 게임 개발자 출신”

이미지=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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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업계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발족하는 등 결사항쟁을 예고했다. 게임업계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대위 출범식을 열고  “게임은 소중한 문화이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를 여는 창"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전날(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을 최종 의결했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정식 등재된 것이다.  

◇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대위에 89개 단체 합류

WHO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er)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바 있다. 이번 최종 의결로 ‘게임중독=질병’이라는 공식이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게임 이용 장애에는 ‘6C51’ 코드가 부여됐으며, 정신적·행동적·신경발달장애 영역에 하위 항목으로 포함됐다. ICD-11 효력은 오는 2022년부터 발생한다. 다만, ICD-11의 경우 기본적으로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각 회원국은 각자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이를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게임업계는 결사항쟁에 나선 모양새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공대위는 한국게임학회와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해 학회·공공기관·협단체 56곳과 대학 33곳까지 총 89개 단체가 합류한 상태다. 

이날 공대위 현수막과 참석자들 가슴에는 근조(謹弔)가 새겨져 있었다. 공대위는 이번 출범식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검은색 복장을 주문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산업의 위기 상황을 근조로 표현한 것이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공대위)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 사진=원태영 기자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공대위)는 2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 사진=원태영 기자

공대위는 이날 자유선언을 통해 “게임은 우리 젊은이들의 살아 있는 문화다. 게임은 배움의 장이자 소통의 장”이라며 “그러나 지금 현대판 ‘마녀’가 돼 가고 있다. 19세기에는 소설이, 20세기에는 TV가 그 대상이었다. 기성세대들은 21세기에 젊은이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새로운 약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게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게임이 소설이나 TV와 다른 점이 있다면 셋 중 유일하게 질병코드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라며 “소설의 독자들은 과한 몰입으로 인해 현실과 환상과의 구분 능력을 잃고 건설적이지 못한 분야에 힘을 쏟는다고 비난받았으나, 이토록 비난받던 소설도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아니, 질병으로 분류되기는커녕 이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소설 읽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이어 “게임은 저희들의 소중한 문화이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를 여는 창이며, 5000년 역사에서 한국이 자랑할 만한 혁신의 산물이라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호소하고자 한다"며 “게임은 인공지능을 낳은 토대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던 알파고의 아버지 데이비드 하사비스가 게임 개발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향후 문체부와 복지부, 국방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게임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민관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공대위의 상설 기구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사회적 합의 없는 KCD 도입 강행 시 법적 대응을 강력하게 검토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대위는 ▲보건복지부 장관 항의 방문, 보건복지위 위원장 및 국회의장 면담 ▲게임 질병코드 관련 국내외 공동연구 추진 및 글로벌 학술 논쟁의 장 마련 ▲게임 질병코드 도입 ‘비포&애프터(Before & After)’ FAQ 제작 및 배포 ▲게임 질병코드에 맞설 게임스파르타(파워블로거) 300인 조직과 범국민 게임 촛불운동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게임 질병코드 지정에 대한 애도사에서 김병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회장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임요환·장재호·페이커 같은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며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는 왜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이 나오지 않냐’ ‘왜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를 개발하지 못하냐?’고 말할 때도 우리에게는 e-Sport의 종주국이며 게임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 자부심은 과거의 영광이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결국 현실이 된 ‘게임중독=질병’

앞서 WHO는 게임 이용 장애를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행위의 패턴’으로 정의했다. 진단 기준은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 및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런 현상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게임산업 역시 이번 WHO의 결정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 정부는 ICD를 기초로  한국질병분류코드(KCD)를 5년마다 개정하고 있다. 현재 KCD는 2020년 고시를 목표로 8차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ICD-11의 경우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빠르면 9차 개정 시기인 2025년부터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 내용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도입은 2026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특히 이번 WHO의 결정과 관련해 부처 간에 이견이 발생한 상황이다. 일찌감치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찬성 입장을 밝힌 보건복지부가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질병분류법의국내 도입을 공식화하려 했지만,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협의체 불참을 선언하며 복지부의 움직임에 반기를 들고 나선 상태다. 앞서 문체부는 WHO의 이번 결정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문체부는 KCD의 경우, 통계청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주관하는 만큼, 복지부 주도의 민관협의체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처 간 갈등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 28일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복지부와 문체부 등 관계부처, 게임업계, 의료계, 관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서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지난 주말 WHO가 게임 이용 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ICD) 개정안을 확정했다”며 “그에 따라 국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관계부처들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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