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정부, 공유경제 육성 적극 지원···한국은 이해관계 갈등에 묶여 진전 없어
정부의 일부 항목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 신산업 발목 잡아
소비자들은 공유경제에 익숙···전문가들 “기존 산업 보호 위한 보완책 마련해 공유경제 동참해야”

정부가 ‘제2의 벤처 붐’을 조성한다며 규제 완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보기술(IT), 스타트업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정부가 ‘제2의 벤처 붐’을 조성한다며 규제 완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보기술(IT), 스타트업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정부가 ‘제2의 벤처 붐’을 조성한다며 규제 완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와 정보기술(IT)·스타트업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혁신을 위해선 이해관계자와의 사회적 갈등을 풀어야하는데도 정부가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내비치고 있고, 정부는 피해계층을 외면하고 혁신만 강조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을 보여 인식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스타트업·기업을 중심으로 공유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공유 주방·숙박·차량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절차는 물론, 새로운 서비스·제품이 있어도 정부의 규제 탓에 마음껏 사업을 키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2일 발표한 ‘미국·일본·EU 등 경쟁국보다 불리한 신산업 분야의 대표 규제 사례’ 보고서를 보면, 국내 신산업 진입 장벽은 일본·중국 등과 같은 해외 국가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의료·바이오·ICT 등 주요 신산업 분야에서 진입 규제가 심했다.

한 예로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는 원격의료가 전면 허용되고 있다. 중국은 텐센트·바이두 등 ICT 기업들이 원격의료를 접목한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의료계의 반대로 시범사업만 수십 년째 진행 중이다.

아울러 국제연구기관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진입 규제 환경은 조사 대상 54개국 가운데 38위에 그쳤다. 미국과 일본, 중국은 물론 이집트보다도 낮은 순위다. 대한상의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와도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산업은 허용되지 않고 신규 사업자는 시장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포지티브 방식’이 신산업 포기하게 만들어”

일각에선 정부의 일부 항목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 신산업을 포기하게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론 규제 샌드박스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유주방은 이전 5개사에서 올해 12개사로 급증했지만, 식품위생법상 다수 음식사업자가 하나의 주방(즉석판매제조가공업 허가를 받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칸막이, 출입구, 조리 도구를 개별 설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많은 투자비용이 요구된다. 특히 이 경우 한정된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공유경제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량 공유 사업을 둘러싼 갈등도 6년째 제자리다. 국토교통부와 국회가 지난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로 택시업계와 스타트업계가 손잡고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사업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지금까지 새로운 운송 서비스를 위한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숙박공유 서비스도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일부만 허용된다. ‘농어촌 민박업’으로 등록된 숙소를 제외하면 내국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숙박 공유 서비스는 없다. 도심형 숙박공유업도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 한옥체험업, 농어촌민박업 등 법으로 나열해 허용하고 있어 외국인만 이용이 가능하다.

한국 공유경제 서비스 및 규제 내용 현황. / 표=이다인 디자이너
국내 공유경제 서비스 및 규제 내용 현황 / 표=이다인 디자이너

앞서 정부는 공유경제 활성화 추진 과제를 통해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도시지역 내국인도 거주 주택의 빈 방을 숙박용으로 제공하는 숙박공유 허용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연 180일 한도 내에서만 영업할 수 있도록 했고, 허용 주택 종류도 추후 시행령을 통해 규정할 계획이다.

숙박공유업계는 정부의 정책 보완에 기대감을 보였다. 숙박공유업이 공유경제 활성화 정책에 묶여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으리라는 관측에서다. 하지만 차량공유를 둘러싸고 이해 당사자들 간 대립이 거세지면서 정부가 추진하려던 숙박공유 정책에서도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기존 산업과 신산업 간의 갈등이 생기면 그들을 설득하고 중재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규제를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커졌다”며 “(그러다 보니) 새로 나온 숙박공유 활성화 정책도 잘 시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은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하고 필요한 부분은 사후 규제

소비자들은 공유경제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승합차 공유서비스 ‘타다’는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회원 수 50만명, 차량 1000대를 보유하게 됐다. 숙박공유 서비스로 알려진 에어비엔비도 국내 이용자 290만명 중 202만명(69%)이 한국인으로 집계됐다.

해외 국가들은 공유경제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공유경제와 같은 신산업 육성에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원칙을 적용한다. 새로운 시장·기술·산업이 등장하면 최소한의 규제만 적용하고,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부분만 골라 사후 규제한다. 중국과 동남아도 같은 방식으로 디디추싱·그랩 등 차량공유 기업을 성장시켰다. 규제가 많은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도 사업용 차량면허(VTC)를 취득한 사람만 우버(Uber) 운전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해 우버와 택시업계 간 갈등을 해소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는 국토부와 산업부, 지자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유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협동 구조를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공유경제는 일종의 융합 서비스인데, 관련 부서 어느 곳에서도 명확하게 업무를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는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해 스타트업의 공유경제 시장 진출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가 이해집단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해집단의 반발을 제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타협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공유경제는 지금까지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는 10년 전부터 공유경제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공유경제 기업을 육성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기존 산업계를 위한 별도 보완책을 마련해 공유경제 흐름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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