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가 곧 가치···과천자이·과천써밋 등 펫네임 없이 지역명과 브랜드로만 승부수

수년 간 길고 외래어가 난무하는 아파트 작명이 이어졌지만, 최근 들어 짓는 지역 내 랜드마크 사업장에서는 간단명료한 이름이 각광받고 있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수년 간 길고 외래어가 난무하는 아파트 작명이 이어졌지만, 최근 들어 짓는 지역 내 랜드마크 사업장에서는 간단명료한 이름이 각광받고 있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복잡한 건 딱 질색, 심플 이즈 더 베스트(Simple is the best).’

과천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은 하루 전인 지난 26일 정기총회 결과를 통해 아파트 네이밍을 최종 발표했다. 그동안 가칭 과천 더퍼스트클래스 푸르지오 써밋으로 불리던 해당 단지 명칭을 ‘과천 (푸르지오) 써밋’으로 최종 확정한 것이다. 앞서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조합 측은 조합원에게 과천써밋, 과천퍼스트써밋, 과천 더퍼스트클래스 푸르지오 써밋 세가지 선택지를 주고 다수결로 결정하겠다고 공지했다. 그 결과 1안 과천써밋이 372표를 얻으며 최종 단지명으로 결정됐다. 가장 인기가 없던 단지명이 가장 이름이 긴 3안이었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업계에서 아파트 작명에 군살빼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수년 간 아파트 입지나 자연환경, 학군 등 사업장의 특장점 등 특색을 살려 단지명에 사용해 온 펫네임(petname, 애칭)으로 인해 각종 외래어가 난무했다. 수년 전 처음 펫네임이 도입될 당시만 해도 파크(park), 리버(river) 등 인근 자연환경 가치를 부각시키는 직관적 단어 사용이 많았다. 그러나 갈수록 아너힐즈, 블레스티지, 금빛 그랑메종 등 추상적 단어가 늘어났고 한글로 단지 이름을 부를 때에도 열 자가 넘어갈 정도로 이름이 긴 곳이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외래어가 길수록 세련된 느낌이라며 2개국어, 심지어 3개국어까지 합쳐진 합성어를 선호하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입지적 우수성이 뛰어나 지역 내 대표 단지를 꿈꾸는 곳에서는 되레 이름에 군더더기를 빼고 간단명료한 작명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요층에게 단지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펫네임 도입 취지에 반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이 단지만 해도 앞서 지난 2017년 3월 시공사를 선정할 당시 박창민 전 대우건설 사장이 직접 나서 챙겼고, 심지어 미분양이 날 경우 대우건설이 매입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과천 내 대장주로 꼽히는 사업장이다.

해당 사업장 인근에서 지난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과천주공6단지 정비조합 역시 새 아파트 이름을 ‘과천자이’로 지었다. 최근 분양하는 사업장 단지치고는 단순하지만 지역 과천과 자사 브랜드 자이만 조합해 과천을 대표하는 아파트가 자이가 되게끔 짓겠다는 각오를 담았다는 게 GS건설 측 입장이다.

이 회사는 올해 강남권 마수걸이 사업장으로 앞세워 지난달 분양을 마친 서울 서초구 방배3동 ‘방배그랑자이’에도 사업장 위치를 일컫는 방배와 자사 브랜드 그랑자이 외에 펫네임을 붙이지 않았다. 방배역 역세권에 우면산이 있는 숲세권, 예술의 전당 등 문화시설이 지척에 있음에도 말이다.

사업장 명칭은 아파트의 첫인상이다. 단지명으로 아파트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고, 입지는 물론 브랜드, 상품 특징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이 같은 까닭에 분양을 앞둔 건설사들은 좋은 단지명을 짓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공모전을 통해 단지명에 심혈을 기울인다. 준공 후에는 1만2000세대가 들어서게 될 국내 최대 규모의 단지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이 최근 전 국민 대상으로 아파트 이름 짓기에 나선 것만 봐도 단지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 사업장은 지난달 초까지 1등 상금에만 5000만 원, 우수상, 장려상 포함하면 전체 당선작에만 총 8000만 원의 시상금을 걸며 명품 이름 짓기 공모전에 나선 바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명은 그 단지를 상징하는 이름인 만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장점과 친숙함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00아파트에 사는 것이 자부심이 된 시대인 만큼 간단명료하면서도 강력한 인상을 주는 작명 작업에 대한 중요성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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