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혐의 다툴 여지 있어, 구속 필요성 인정 어려워”
김 대표는 혐의 전면 부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관련 혐의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어 구속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이에 윗선 수사에 속도를 내려던 검찰의 계획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5일 김 대표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회의 진행 경과와 그 후에 이뤄진 증거인멸 진행 과정이나 은닉 과정, 김 대표 직책 등을 볼 때 증거인멸 교사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아울러 “김 대표의 주거와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사장, 박모 삼성전자 부사장에 대해선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송 부장 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 등 3명은 지난해 5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임직원들과의 회의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및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자료와 내부 보고서를 은폐, 조작하도록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지시를 받은 이들은 직원 30여명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칭하는 ‘JY’와 ‘VIP’, 그리고 ‘합병’, ‘미전실(미래전략실)’ 등 단어를 검색해 관련 문건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사무실과 바이오로직스 사무실 등을 증거인멸 등 혐의로 압수수색한 바 있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에는 정현호 삼성전자 TF 사장, 김 대표 등 고위 임원들의 사무실이 포함됐다. 지난 19일부터 검찰은 김 대표를 사흘 연속으로 불러 증거인멸 지휘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지시를 받은 하급자와의 대질 신문에서 화를 내는 등 혐의를 적극적으로 전면 부인했고, 검찰은 지난 2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분식회계 과정을 숨기기 위해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증거인멸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어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의 핵심 연결 고리로 꼽히는 김 대표의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의 윗선 수사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김 부사장의 직속상관이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의 소환 시기 역시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김 대표에 대한 기각 사유를 분석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