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 유출은 처벌 대상이다”? ☞ 사실
② “통화 내용 유출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익제보’다”? ☞ 과장

시나브로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아무 검증 없이 유포되고 있는‘가짜 뉴스’·‘거짓 정보’는 불특정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또한 포털·SNS 등이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 알고리즘의 부작용인 ‘필터버블(Filter Bubble, 이용자가 특정 정보만을 편식하게 되는 현상)’로 인해 ‘진짜’가 ‘가짜’로 치부되는 사례도 상당하다. 시사저널e는 ‘가짜 뉴스’·‘거짓 정보’로 인해 생기는 혼란을 줄이고, 뉴스 수용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개선을 위해 ‘팩트탐정소’를 고정코너로 운영한다. [편집자주]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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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비밀 유출 논란’이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외교 소식통을 통해 파악했다”며 “지난 7일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방일(5월 25∼28일) 직후 방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주미 대사관 소속 외교관을 통해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청와대는 23일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은 국가기밀에 해당하고, 외교부가 유출한 외교관에 대한 감찰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이번 논란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공방은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 논란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이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여부 및 처벌 여부, 둘째는 강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이 ‘공익제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여부다. 이에 시사저널e ‘팩트탐정소’는 법조계, 학계, 정치권 등의 취재를 통해 이들 쟁점들을 팩트체크해 봤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23일 오전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23일 오전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①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 유출은 처벌 대상이다”?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 유출이 ‘국가기밀죄’의 기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법상으로는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정상간 통화내용은 모든 국가에서 ‘기밀’로 다뤄지고 있다. 청와대도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은 ‘3급 국가기밀’로 분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 제4조(비밀의 구분)에 따르면, 1급 비밀을 ‘누설될 경우 대한민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전쟁을 일으키며, 국가의 방위계획‧정보활동 및 국가방위에 반드시 필요한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위태롭게 하는 등의 우려가 있는 비밀’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2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 3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 등으로 각각 규정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 학계 등에서도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은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상위원장도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외교기밀 누설 사태를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밝힐 정도다.

또한 법원의 기존 판례들에서도 외교기밀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비밀유지가 외교정책상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없는 경우’ 등에 해당해야만 외교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이 국가기밀 누설로 판단되는 만큼 처벌이 가능하다.

보안업무규정 제25조(비밀의 공개)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국민에게 긴급히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 ‘공개함으로써 국가안전보장 또는 국가이익에 현저한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등 일정 사유에 한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동 규정 제26조(보안심사위원회)에 따른 보안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사람은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속 기관의 장이나 소속되었던 기관의 장의 승인 없이 비밀을 공개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 처벌 기준은 형법에 명시돼 있다. 형법 113조(외교상 기밀의 누설)에는 ‘외교상의 기밀을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누설할 목적으로 외교상의 기밀을 탐지 또는 수집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등 관련 조항이 있다.

 

② “통화 내용 유출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익제보’다”? 

 

공익제보(whistle-blowing)는 영국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시민의 위법행위와 동료의 비리를 경계하던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한 조직의 내부의 부정, 비리 등을 외부에 알려 공공의 안전, 권익 등 공익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정의된다.

이번 강 위원의 행위에 대해 한국당은 ‘공익제보’라는 입장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강 의원을 통해) 폭로된 내용은 이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 성격"이라며 "한 마디로 외교, 국민 기만의 민낯이 들키자 이제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씌워가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강 의원의 행위는 공익제보로 볼 수 없고, 국익을 유출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법조계와 학계 등도 대부분 여야 4당과 비슷한 의견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강조하며 공익제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차한 변명’이라는 것이다.

윤범준 법무법인 예화 변호사는 “(강 의원이 공개한)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에서는 공권력의 부당한 압력, 부정, 부패, 비리, 위법 행위 등 공익제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강 의원과 한국당이 공익제보의 이유로 든 ‘구걸외교’와 관련해서도 그는 “타인이 봤을 때 정상적인 외교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비춰봤을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하는 것도 충분히 전략적으로 가능한 만큼 ‘구걸외교’라고 판단하는 것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완식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익제보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제보의 대상과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도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주체가 바뀌었을 때에도 공정하게 통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공익제보라고 보기 보다는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고 밝혔다.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해서도 윤 변호사는 “알 권리라는 것도 국민의 기본권인 만큼 보호돼야 하는 측면이 반드시 있지만, 반대로 대비되는 기본권들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면서, “헌법 제37조에서 법률로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알 권리도 무제한적으로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헌법 제37조 2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윤 변호사는 “지금과 같은 경우 분명한 형법상 범죄행위”라며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알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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