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편집 전문가 구인광고에 “보수 없이 유럽 40일 여행 경비 지급”
근로기준법 위반 지적 잇따르자, 구인자 “명예훼손” 형사고소 주장
① “무보수, 통화(通貨)로 주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 ☞ 조건부 사실
② “개인정보 공개된 커뮤니티에서 명예훼손”? ☞ 비약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시나브로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아무 검증 없이 유포되고 있는 ‘가짜 뉴스’·‘거짓 정보’는 불특정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또한 포털·SNS 등이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 알고리즘의 부작용인 ‘필터버블(Filter Bubble, 이용자가 특정 정보만을 편식하게 되는 현상)’로 인해 ‘진짜’가 ‘가짜’로 치부되는 사례도 상당하다. 시사저널e는 ‘가짜 뉴스’·‘거짓 정보’로 인해 생기는 혼란을 줄이고, 뉴스 수용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개선을 위해 ‘팩트탐정소’를 고정코너로 운영한다. [편집자주]

“유럽 40일 체험단을 촬영&편집해 주실 전문가님을 모십니다.”

영상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한 유명 커뮤니티 구인·구직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사건 글)이 온라인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여행업체 관계자가 ‘유럽에서 40일간 촬영 및 편집을 할 사람’을 구하며 페이(pay·보수)란에 ‘0원’을 게재해 공고하면서다. 이 관계자는 무보수 대신 여행 과정에서 발행하는 모든 경비를 회사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게시글에는 곧바로 ‘범법자가 구인을 한다. 바로 구속시켜야한다’는 취지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자 구인자는 이름, 회사명,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된 글에서 자신을 범법자로 몰았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 하겠다고 대응했다. 이 글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40일 근무에 무보수 구인글’이라는 제목 등으로 회자됐다. 27일 오후 3시 현재 이 글은 해당 게시판에서는 삭제된 상태다.

시사저널e ‘팩트탐정소’는 이러한 구인 방식이 현행법에 저촉되는지, 구인자가 댓글을 작성한 신원 불명의 인물을 형사고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등 온라인에서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주장들을 팩트체크 해봤다.

/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이 사건 글은 지난 5월 21일 오후 8시 16분 게재됐다. 여행사가 ‘유럽 40일 체험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일정을 함께 다니며 촬영과 편집을 맡을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작성자는 이 사건 글 제목에서 ‘전문가를 모신다’고 했지만, 내용에서는 “상업 활동가보다는 여름 방학을 맞아 유럽으로 여행을 계획 중인 대학생에게 어울릴 것이다”고 적었다.

글 게재 약 1시간 뒤인 오후 9시 22분 닉네임 e*******을 사용하는 이용자는 “페이 0원, 범법자가 구인을 하네. 준다고 하고 안 줘도 범죄고 구속되는데, 첨부터 안 준다네. 이런 인간은 바로 구속시켜야 함”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렇다면 투***의 구인광고는 현행법에 저촉될지를 먼저 살펴보자. 노동관계법상 근로자의 임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법률은 근로기준법이다. 이 사건 글과 관련해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려면 지원자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게 먼저다.

무보수, 통화(通貨)로 주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조건부 사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적용할 수 있다.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로 정의된다.

즉 근로자성은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판단 기준으로 10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통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단기근로자 등 명칭에 상관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를 가지고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근로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임금을 목적으로 한 근로 등 대법원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 경우 사업자와 근로자가 맺는 근로계약이 아니라 사업주와 사업주 사이 맺어지는 민법상 계약으로 볼 여지가 존재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원자가 채용 공고자의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따른 것이 아니고, 단순히 동행하며 촬영·편집 업무를 진행해 결과물만 제출하는 것이라면 민법상 계약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프리랜서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근로자성을 명쾌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반면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은 “이 사건 글이 올라온 곳은 구인·구직 게시판으로 공고자는 단기간의 근로계약을 청약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야겠지만 지원자를 근로자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글에 지원한 사람을 근로자로 볼 수 있다면, 40일간 근무한 임금으로 0원을 주겠다는 이 사건 글 내용은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 규정에 위배된다. 근로기준법은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이 ‘최저’ 기준이기 때문에 근로관계 당사자가 근로조건을 이보다 낮게 할 수 없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2019년도 최저임금액은 시급 8350원으로, 월급으로 환산하면 174만5150원이다. 또 같은법 제15조 제1항은 ‘이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해 무효로 한다’고 규정한다.

‘여행 경비를 임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투***의 주장 역시 근로기준법에 저촉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43조는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현금으로 임금을 주라는 얘기다.

하지만 예외도 존재한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현금이 아닌 다른 물품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단체협약’을 맺는다면 현물로 임금을 대신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물을 임금으로 보기 위해서는 단체협약 등 미리 지급조건과 지급금액이 확정돼 있어야 한다”라면서 “미리 조건화가 돼 있더라도 근로자가 통화로 환가를 원한다면 사용자는 이를 현금으로 돌려줄 의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공개된 커뮤니티에서 명예훼손” ? 비약

논란이 된 게시물의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와 함께 공개된 게시글의 명예훼손 여부도 쟁점이 됐다. 투***는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른 거짓으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피해자의 회사명이 공개된 글에서 피해자를 범법자라며 구속시켜야 된다는 내용으로 회사의 명예 훼손과 업무를 방해했다”며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반발했다.

명예훼손은 형법상 명예훼손(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포함)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구분된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전파성이 강해 형법상 명예훼손죄 보다 엄하게 처벌된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공연성’ ‘사실적시’ ‘고의’를 구성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이 3가지 구성요건 외에 ‘비방목적’을 추가 요소로 요구한다. 즉,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공연성’ ‘사실적시’ ‘고의’ ‘비방목적’이 성립돼야 한다.

공연성과 관련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사실 또는 거짓의 사실을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보통신망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하기 쉽지 않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쉽게 게시물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게시판에 댓글을 게시하는 경우 그 댓글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법원은 해당 내용이 전파될 가능성만 있다면 그 사실적시가 발언을 통한 것이든, 문서를 통한 것이든, 정보통신망을 통한 것이든 상관없이 공연성을 인정하고 있다. 즉, 닉네임 e*******의 댓글은 공연성이 인정될 여지가 상당하다.

명예훼손죄의 두 번째 요건은 사실적시 또는 허위사실적시가 인정되는지 여부다. 우리 법원은 사실적시를 ‘의견’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본다. 여기서 의견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담은 것을 뜻한다. 허위사실 적시 역시 의견이 아닌 사실적시에 해당해야 하고, 행위자가 자신이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e*******의 “구속시켜야 함”이라는 주장은 사실적시보다는 이 사건 글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예훼손죄의 세번째 요건은 고의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법원은 사건의 정황, 발언 또는 행위의 목적을 중요하게 고려해 고의성을 판단하고 있다. 이 사건 글에서 e*******의 고의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비방목적’이 인정돼야 한다. 비방목적의 존부에 대해 대법원은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 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방목적이 부정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적시된 내용이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고 지나치게 경멸적인 표현이 없다면 비방목적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백원기 회장은 “닉네임 e*******의 댓글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 올라간 글로 공연성이 인정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첨부터 돈을 안 준다고 하네’라는 표현은 자신의 가치판단이 들어간 내용으로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으로 판단되고, 고의나 비방목적 또한 인정되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명예훼손죄에서 구성요건을 모두 총족하더라도 진실한 사실(진실성)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공익성)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러한 ‘위법성 조각사유’는 형법상 명예훼손에는 명문화 돼 있으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진실성과 공익성을 요건으로 하는 위법성을 조각하는 특별규정이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적시한 내용이 모두 처벌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비방목적’이 요건이기 때문에 비방목적이 없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적용되고, 위법성조각 사유 규정이 역시 적용될 수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혼란을 막기위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에도 명확히 위법성조각 사유를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국회와 정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에도 위법성 조각사유를 추가하는 입법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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