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보수계 반발, 각계각층 다양한 의견···정치권, 내년 총선 앞두고 상황 주시
학계·여성계 등 ‘촘촘한 입법’ 중요성 강조···현실에 맞는 법개정 필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 개최···임신중단 시기 등 핵심 쟁점 논의

22일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진=이창원 기자
22일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진=이창원 기자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헌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밝혀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을 66년 만에 폐지할 가능성이 열렸다.

헌재가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종교계, 보수계 등의 강한 반발도 존재하는 만큼 논의는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낙태죄와 관련해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다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5월말이나 6월초 낙태죄 폐지 관련 회의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당정은 지난 4월 22일 종교계·여성계 등 의견을 수렴한 뒤 낙태죄 폐지 법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학계, 여성계, 의료계, 종교계, 법조계 등은 현재 상황에서 ‘촘촘한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낙태죄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나가려는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 같은 목소리는 22일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에서도 재차 강조됐다. 이 자리에서 발제를 맡은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자기낙태죄‧동의낙태죄에 대한 형사처벌 존치 여부 ▲임신종결에 대한 자기결정권 수준별 시기 구분 ▲불완전한 자기결정에 대한 보완 ▲태아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고지되지 않는 낙태 관련 분쟁 ▲법체계 정합성 문제 ▲낙태죄 처벌규정 정비 ▲의료인 낙태 시술 거부권 인정 여부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 향후 주요 쟁점들을 제시하면서, 관련 규정‧절차 등 구체적 정비 과정에서 토론회‧공청회 등을 통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동식 연구위원(한국여성정책연구원), 차혜령 변호사(헌법소원 대리인단), 김재연 법제이사(대한산부인과의사회), 정재우 신부(카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이재명 입법조사관(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등은 해당 쟁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자들은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를 입법과정에서 삭제하고, 성차별적이고 낙태 예방에도 효과가 적은 현행법의 처벌 조항 또한 개선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다만 정 신부는 ‘낙태하지 않을 자기결정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임신한 많은 여성들이 주변으로부터 낙태 압력을 받는다”며 “여성이 낙태하지 않을 자기결정권이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의 압력을 받는 여성을 보호할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그런 방법이 여성에게 제공돼야 한다”면서 “또한 자녀 양육의 책임을 기피하는 아기 아버지의 방임에 대한 조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서는 핵심 쟁점인 임신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 시기도 논의됐다. 임신중절 시기는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월경 시작일~13주6일), 임신 제2삼분기(14주~27주6일), 임신 제3삼분기(28주~40주)로 구분한다.

앞서 헌재는 ‘단순위헌의견’에서 1삼분기(마지막 월경 시작일~13주6일)에는 ‘어떤 사유를 요구함 없이 여성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임신중단이 가능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토론자들은 지금까지 임신중단을 한 사례들을 비춰볼 때 경제‧사회‧문화적 여건, 가족과의 불화 등 복잡한 상황에 따라 임신 1삼분기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 의료인 거부, 음성 시술, 고비용 협상 등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입법과정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의료기술 수준, 의료진의 교육수준‧숙련도, 등 안전성 기준을 마련하고, 임신중단 승인 제도, 상담, 숙려기간 등도 여성의 건강권‧생명권 보장 차원에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인의 낙태시술 거부 권리도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의료인이 신념, 종교적 이유 등으로 낙태시술을 거부했을 때 의료법(제15조제1항)상의 ‘진료거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미국, 스위스, 노르웨이 등 국가들처럼 낙태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후송할 의무를 부여하거나 미리 가능한 의료기관을 지정해 고시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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