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 거치지 않아···인사권 남용”
당사자 “노조활동 방해하려는 부당노동행위도 의심” 주장···사측은 ‘묵묵부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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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현대시멘트가 본사에서 근무하던 노조 대표자를 지역영업소장으로 전보한 것은 부당전보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절차적 하자에 주목해 원고인 노조 대표자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는 절차적 하자 외에도 사측이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한일현대시멘트 한 지역영업소장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전보 구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1969년 현대건설 시멘트 사업부로부터 독립한 현대시멘트는 지난 2017년 7월 한일시멘트-LK투자파트너스 컨소시엄에 피인수 돼 한일현대시멘트가 됐다. 한일현대시멘트는 지난해 1월까지 회사 내부조직을 개편했는데, 그 과정에서 A씨를 한 지역영업소장으로 전보했다.

A씨는 오랜기간 회계 및 기획, 감사 업무를 해온 직원을 영업 직종으로 전보한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A씨는 1996년 1월 현대시멘트에 입사해 회계, 기획, 감사 등 업무를 맡다가 지난 2015년부터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채권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는 지난 2016년 6월 설립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한일현대시멘트지회장이기도 하다.

A씨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번 소송을 냈다. 다만 행정소송에서는 ‘부당전보’ 부분만 다투기로 했다.

법원은 절차적 하자에 주목했다. 한일현대시멘트가 A씨를 지역영업소장으로 전보할 만한 업무상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준수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결론이다. 이 회사 인사이동규정에는 ‘정기인사이동은 소속부서의 요청 또는 인사부서의 제안에 따라 인사위원회에서 종합심의해 대표이사의 결재를 얻어야 한다’ ‘과장 이상의 인사이동은 경력 직종의 범위 내에서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재판부는 “정기인사이동을 위해서는 인사이동규정에 따라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 사건 전보 과정에는 그러한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며 “전보를 위해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장 이상 직급 직원을 예외적으로 다른 직종으로 전보할 때에는 전보 절차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신의칙상 근로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협의절차가 요구되는데도 회사는 원고의 동의를 얻거나 그가 속한 노동조합과 협의를 하지도 않았다”며 “이 사건 전보는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인사권을 남용한 경우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의 쟁점은 아니었으나 A씨는 사측이 노조활동을 방해하려는 부당노동행위도 했다고 보고 있다. A씨는 “노조 설립 당시 사무직 직원 전원이 노조에 가입했는데, 합병 이후 대부분 탈회를 했다. 자발적 탈회라고는 하지만 사측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분명 있었다고 의심된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에 따르면 2017년 6월 124명이었던 조합원은 이 사건 전보가 이뤄진 지난해 1월 16명으로 줄었다. 특히 한일현대시멘트 본사에는 조합원이 한명도 남아있지 않았던 시점도 있다. 다만 최근 인사이동으로 조합원 1명이 본사로 복귀했다고 A씨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보로 원고가 조합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부당전보에 대한 법원 판결과 A씨의 부당노동행위 주장에 대한 사측의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한일현대시멘트 관계자는 “확인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라고 답한 후 연락이 없었다.

한편, 한일현대시멘트에는 A씨가 가입한 사무직 직원 노조 외에 생산직 직원들이 가입된 단위노조가 존재한다. 이 노조가 교섭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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