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애국주의’ 강조···SNS선 연일 ‘반미감정’ 부추겨
연령대별로 미국산 제품 반응 갈려···‘20대 취업 악영향’ 우려에 비난 자제 의견도

미·중 양국의 관세 부과로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다시 대대적인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미·중 양국의 관세 부과로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다시 대대적인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미·중 양국의 관세 부과로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다시 대대적인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나섰다. 중국은 미국 관세부과에 따라 맞대응에 나서면서도 사회주의 특성을 활용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 지도부는 관영언론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애국주의 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 특히 신(新)중국 창립 70주년을 강조하면서 교육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맞아 공산당에 대한 반발 심리를 차단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정부가 오는 10월 1일 신중국 창립 7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나와 나의 조국’이라는 주제의 선전 및 교육 활동을 중국 전역에 실시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對)민 교육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사상인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4개 의식’, ‘4개 자신감’을 확고히 하겠다는 목표도 함께 밝혔다.

대민 교육을 위해 중국 정부는 중국 도시 및 시골 곳곳을 순회하며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개혁과 더불어 신중국 창립 70주년의 발전상을 홍보하면서 애국주의 관련 책 읽기와 유공자 추모, 국방 교육 활동 등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은 지난 19일 관영언론 환구시보 후시진 총편집인의 발언을 인용해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우리에게 조선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며 “그 전쟁은 3년 넘게 싸웠고 그 후 2년간 논의했는데 우리의 전장에서 의지와 성과로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머리를 숙이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해당 보도에서 “우리는 상감령(上甘嶺) 정신을 고양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면으로 봐야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며 극한의 인내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삶을 통해 상대방의 의지를 꺾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감령은 한국전쟁 당시 1952년 10~11월에 있었던 중국군 참전 전투를 말한다. 중국은 이 전투에서 최대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내부서 ‘한미령’ 확산 조짐 커져

중국은 지난 20일 주요 동영상 플랫폼에서 방영되던 미국 유학생활을 그린 중국 드라마 ‘아빠 데리고 유학가기’ 방영을 취소시켰고,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방영분도 잠정 연기시켰다.

중국 정부가 미국 관련 방송도 연기시키자 중국 내부에선 지난 2016년 한국의 사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했던 한한령(限韓令)을 연상시킨다며 미국 문화 관련 묘사를 제한하는 한미령(限美令)이 등장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대학생 텅안니(25)씨는 “중국에선 과거 한한령때와 마찬가지로 위협을 느낄 때 단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년만 해도 SNS상에서 네티즌들이 자체적으로 한미령을 시킨적 있다”며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애국주의를 확산시키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 같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 내 대미 강경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 최대 SNS로 꼽히는 웨이보(微博, Weibo)를 중심으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미국’, ‘미국산 제품 불매’, ‘화웨이’ 등의 해시태그(키워드)를 SNS에 확산시키고 있다.

22일 중국 SNS 웨이보에 등록된 일부 글 캡처본 / 사진=웨이보
22일 중국 SNS 웨이보에 등록된 미국제품 불매운동 관련 글들 / 사진=웨이보 캡쳐

◇‘한미령’ 바라보는 시선, 연령대별로 달라

다만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생각은 세대별로 갈렸다. 20대 청년들은 취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미국 비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텅안니씨는 “중국에선 해외취업이나 외국계 회사로 취업하는 게 트렌드인데 교수님들이 무역전쟁으로 일자리가 줄 수 있다고 해 걱정이다”라면서 “20대~30대 취업준비생들은 한미령 확산 분위기를 오히려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국 다롄에 거주하는 쑨린린(24)씨는 “반미감정이 격화되면서 중국서 인기를 끌던 애플, KFC, 나이키 등 구매를 자제하는 분위기인데, 20~30대는 미국산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긴 한다”고 말했다.

반면 왕아무개씨(35)는 “미국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며 “화웨이가 지금 당장은 타격을 입겠지만 구글에 의존하지 말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발해 이 난관을 극복한다면 중국 기업은 오히려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왕씨는 “이럴 때 일수록 우리가 중국산 제품을 더욱 사용해야 한다”며 “화웨이도 미국을 맞설 준비를 하고 있고 어려운 기술전쟁 상황에서도 대응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화웨이는 지난주 미국 상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국업체로부터 부품과 기술을 공급받기가 사실상 어렵게 됐다. 통신장비는 물론 스마트폰 사업부문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조치에도) 화웨이의 5G는 어떤 영향도 안 받을 뿐 아니라 다른 기업이 2~3년 안에 절대 화웨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며 “미국이 우리를 과소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화웨이 사태에 대해 “중국과 미국의 기술 냉전(tech cold war)이 시작된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칼럼을 통해 “기술전쟁이 지금 시작됐다”며 “장기간의 피해를 견딜 수 있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중국 자체가 사회주의 체제이기도 하고 국가력이 강한 국가여서 전면전에 놓인 미중 무역전쟁에서 불매운동 확산, 애국주의를 통해 단결하려는 모습”이라며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 같은 움직임은 오래 끌고 갈수 없다. 조만간 열릴 베이징 고위급협상에서 미국 측의 태도, 반응에 따라 자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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