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의혹,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없어 재수사 불가
조선일보 수사 무마 외압은 사실···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해

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이른바 ‘장자연 사건’ 의혹과 관련해 장씨가 친필로 자신의 피해를 작성한 ‘장자연 문건’이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지만, 가해 남성들의 이름이 명단화됐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진상규명이 어렵다고 최종 결론내렸다.

과거사위는 또 경찰과 검찰의 수사 미진과 조선일보 외압 의혹 등을 사실로 인정했다. 다만 성범죄 재수사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20일 오후 2시 정부과천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장자연 리스트 의혹 사건 최종심의결과를 발표했다. 장자연 리스트 의혹 사건은 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지난 2009년 3월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 접대를 강요받은 내용을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불거졌다.

과거사위는 장자연 문건의 진실성에 대해 “장씨가 문건에서 피해 내용으로 언급한 폭행과 협박 피해 등은 판결로 사실이 확정됐고, ‘조선일보 사장 아들’에 대한 술접대 행위도 사실로 확인됐다”면서 “수사 당시 장씨의 문건에 간인이 찍혀있고, 이름과 자필 사인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다소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체로 사실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장자연 문건에 기재된 내용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윤아무개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장자연 문건을 본 사람들은 이름만 적힌 리스트는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면서 “리스트의 실물을 확인할 수 없고 장자연 문건을 직접 본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장씨가 리스트를 작성했는지, 또 다른 사람이 이를 작성했는지, 리스트가 장씨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기재한 것인지, 누구 이름이 기재돼 있는지 등에 대해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과거사위는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될 수는 있지만 수사를 개시할 정도로 객관적 혐의가 확인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장씨의 지인들의 진술은) 직접적인 증거로 삼기 어렵거나 성폭행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판단할 수 없다”라며 “성폭행이 사실인 경우 그 혐의가 매우 중대하지만 진술만으로 성폭행이 실제 있었는지, 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가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가 밝혀질 가능성이 있더라도 단순 강간 및 강제추행은 공소시효가 완성됐고,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과거사위는 ▲경찰의 부실한 압수수색 ▲디지털포렌식 결과와 압수된 휴대폰이 다른 점 ▲수사검사의 압수물 처리 지휘의 부적정성 ▲수사검사의 통화내력 기록편철 누락 ▲디지털 압수물 자료 편철 누락 ▲인터넷 자료 현출의 누락 ▲장씨 사망 직전 발송한 문자메시지 3통이 삭제된 의혹 등을 이유로 검·경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이나 검찰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이례적인 사건”이라면서도 “자료가 누락된 것에 어떤 의도가 담겼는지, 외압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관계자들이 경찰청장과 경기청장을 찾아가 성폭행 피해 가해자로 지목된 방아무개 사장을 조사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특히 경기청장에게는 조선일보의 위력을 보여 협박한(특수협박)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이를 형사처벌 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과거사위는 “조선일보가 2009년 당시 경영기획실장을 중심으로 대책반을 만들어 장자연 사건에 대처하고,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찾아가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하고 한 번 붙자는 겁니까’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조선일보가 경기청장을 협박한 행위는 7년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당시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서를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기록 전체를 복사했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과거사위는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과거사위는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 사건과 관련해 재수사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 증거가 사후에 발견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비해 2024년 6월까지 기록을 보존하도록 검찰에 권고했다. 2024년은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최대한 상정 가능한 공소시효 완성일이다.

과거사위는 또 디지털 증거의 원본성 확보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압수수색 등 증거확보 및 보존 과정에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검찰에 권고했다. 아울러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증거은폐 행위에 대해 ‘법왜곡죄’ 입법추진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으며, 검찰공무원 간의 사건청탁 방제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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