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권력분산·견제기능 강화 등 명분과 반대되는 행보
‘의원정수 확대’ 재점화···“비례·대표성 확보” vs “지역구 지키기”
검경 수장, 수사권 ‘매달리기’···‘민주주의·원칙·개혁’ 내세우지만 '그들만의 명분'

선거제 개편안 관련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재차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진=이창원 기자
선거제 개편안 관련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재차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진=이창원 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선거제 개편안,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법안,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법안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못한 상황에서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 법안과 관련된 여야 정치권, 검찰, 경찰 등이 각각 서로 다른 입장차를 내비치면서다.

패스트트랙 지정법안의 주요 명분은 권력기관들의 권력 분산‧견제 기능 강화‧효율성 제고 등이지만, 이들 권력기관들은 이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만 함몰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원정수 확대’ 논란 재점화…‘300석 고정’ 합의는 어디로?

선거제 개편안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화두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야당들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명분으로 의원정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안은 지난달 30일 새벽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가결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지역구(225명)‧비례대표(75명) 의원수 조정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연동률 50%) ▲선거권 연령 만 18세로 하향 ▲석패율제 도입 ▲비례대표 추천절차 당헌‧당규 규정 ▲전국‧권역 단위 당원‧대의원 포함 선거인단 투표절차 법정화 등이었다.

특히 의원정수와 관련해서는 지역구 의원 225명, 비례대표 75명 등 총 300명으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이 지정된 지 약 15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의원정수 확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 15일 의원정수 확대 문제와 관련해 “지역구를 줄이는 것은 비례성과 대표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회 본회의 통과도 어렵다”며 “지역구를 그대로 두고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여야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봉책’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만이 양당제 폐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도 지난 14일 “완전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기 위해서 50% 세비 감축을 21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50명을 늘리면 훨씬 국회 비용이 줄어들고 국회의원 특권이 내려가서 국민 가까이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고, 최석 정의당 대변인 또한 “(의원정수 확대는) 향후 선거제 개혁안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다룰만한 주제”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의원정수 확대 주장은 결국 정치권의 ‘지역구 의석수 지키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구수가 감소하고 있는 농어촌 지역의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지역구 의석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지만, 사실 지역구 의석을 줄일 경우 각 정당 내부의 반발과 이어질 갈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깜깜이 예산’, ‘국회의원 특권’, ‘파행 국회’ 등으로 신뢰를 잃은 국회가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민심을 외면한 정무적 판단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다만 민주당과 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300인 (의원) 정수는 지켜져야 한다. 세비를 줄여서 의원 늘리자고 하는데 (여론은) 세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권한이 있는 의원을 늘리지 말라는 것”이라며 “의원정수 확대 문제는 (300인을 넘지 않는다고) 당론으로 정했다”고 못 박았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 또한 16일 “연동형비례제로 해도 의원 정수는 늘어나지 않는다며 패스트트랙을 밀어 붙여 놓고는 잉크도 마르기 전에 수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파렴치한 주장”이라며 “국회의원 늘리자는 정치인과 정당은 내년 총선서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확산될 경우 선거제 개편안 처리가 논의 과정에서부터 진통을 겪으며 결국 본회의에서 좌초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검찰 입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검찰 입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수처 신설‧검경 수사권 조정 둔 검경 ‘기싸움’

공수처 신설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의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은 ‘샅바 싸움’에 한창이다. 검경이 일제히 형식상으로는 ‘민주주의’, ‘원칙’, ‘개혁’ 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수사권’을 어느 쪽이 ‘더 갖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국회에서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형사사법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점을 호소드린다”며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적 원칙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적 원리’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이다. 또한 ‘실효적 자치경찰제’, ‘정보·행정 경찰업무 분리’ 등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수처 신설법안과 관련해서도 그는 “헌법에 근거도 없이 한 기관이 수사권은 물론 기소권과 영장청구권까지 갖는 문제는 법률가로서 걱정할 수 있다”면서, 공수처가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갖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원안대로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14일 경찰 내부게시판을 통해 “수사권 조정은 오직 국민을 위한 개혁이 돼야 한다”며 “국민이 요구하고, 정부가 합의안을 통해 제시하고, 국회에서 의견이 모아진 수사구조개혁의 기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검경 협력관계 설정 및 검사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의 1차적·본래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 부여 ▲검사의 직접수사 제한 등 원칙이 최종 입법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이와 같이 검찰과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논의 과정에서 난항이 전망되고, 이를 둘러싼 여야의 정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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