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안이는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요구한다. 아빠로서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 늘고 있다.

아빠와 함께 비눗방울을 불었어요.

 

주안이와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저녁 시간이라 집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안이가 “짜장라면이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워 곧바로 “아빠가 맛있게 끓여줄게”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순간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성장기 어린이에게는 인스턴트식품보다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을 것같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주안이가 읽고 싶은 동화책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졸음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뿔테 안경을 썼어요.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br>
뿔테 안경을 썼어요.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속상해하는 주안이가 귀여웠지만 역시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지금 독서를 멈추게 하고 재워야 할지, 혹은 빠르게 읽으라고 해야 할지 신속하게 결정해야 했다.

오늘도 영양이 가득한 저녁을 먹었어요<br>
오늘도 영양이 가득한 저녁을 먹었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빠른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크게 보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선택이지만 늘어렵다. 아이가 원한다고 매번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으며 반대로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해서도 안 된다. 거절이 반복되면 아이가 지치고 아빠와 관계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과 눈앞의 상황을 고려해 적절하게 조율해야 한다.

얼마 전 하교하는 주안이를 데리러 갔을 때다. 주안이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했고 대화는 자연스레 ‘집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로 흘러갔다. “아빠, 저녁 먹고 샤워하고 문제집 5장을 푼 다음에 30분만 게임을 해도 돼요?” 여기까지는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이어진 말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런데 아빠는 또 안된다고 할 거지? 알았어!”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을 적었습니다.<br>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할 수 있겠죠?<br>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을 적었습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할 수 있겠죠?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아빠 마음을 돌리기 위한 주안이의 새로운 화법인가? 하고 싶다는 것을 강조한 건가? 그동안 내가 안 된다고만 했나?’ 예상하지 못한 주안이의 반응에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고 결국 아들에게 “아빠가 주안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한적이 많았어?”라고 되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안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일요일마다 30분간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내가 지방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는 한 달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주안이는 주말에 하지 못한 게임을 평일에 하고 싶어 몇 차례 말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약속한 일요일에 게임을 하자”고 답해 아쉬웠다고. 이럴 땐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고는 몇 주 동안 하지 못한 시간을 모아 1시간 동안 게임을 하기로 했다.

게임을 마치고 그동안 쌓인 서운함이 풀린 주안이는 그날밤 아빠의 팔베개를 하고 자겠다고 했다. 나의 품에 안겨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위해서는 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도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상황에 따라서는 게임을 하거나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것, 숙제를 미루는 것을 허락해주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의 37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언제쯤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쉬워질까? 이럴 때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경이 있으면 좋겠다. 혹은 아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보청기도 좋을 것 같다. 여덟 살 아들을 알아가는 것은 새로운 탐험과 같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

 

우먼센스 2019년 5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김지은 글 손준호

사진 손준호, 김소현(@sofiakim1112)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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