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워킹그룹 기자회견, 모두발언 비공개···북한 발사체 대응방안 등 논의
“北, 두 차례 발사체 발사로 한미 속도조절론, 대북식량지원 불만 내비쳐”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비핵화·남북관계 워킹그룹 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비핵화·남북관계 워킹그룹 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최근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두 차례 발사하면서 국제제재 틀 안에서 남북관계 회복 및 대북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한미의 ‘속도조절론’과 대북식량지원에 불만을 내비쳤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미 양국 모두 신중론을 펼치며 대북식량 지원을 통한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도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 4일 240㎜ 방사포와 300㎜ 대구경 방사포, 신형 전술유도무기 등을 발사한 데 이어 9일에는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쏘아 올렸다. 로이터 통신은 9일(현지시간) 미 국방부가 북한의 발사체는 탄도미사일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금지하는 결의 위반 사항이다.

북한의 발사체 발사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과 조찬을 갖는 등 방한 일정을 본격화하는 것과 맞물려 주목된다. 당장 방한 중인 비건 대표와 이도훈 본부장의 10일 한미워킹그룹 핵심 의제가 대북식량지원에서 북한의 무력시위 등 한반도 정세 대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지난 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북측의 추가 발사로 한미 워킹그룹 회의의 대북 인도적 지원 논의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공감을 표시하며 “아무래도 상황이 바뀐 것 같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비건 대표의 방한 일정에 맞춰 또다시 긴장 분위기를 띄우며 한미가 남북협력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실무협의체인 워킹그룹과 남북교류·협력 속도조절론을 겨냥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비건 대표는 “미국은 남북관계의 발전 자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국제제재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남북관계 발전이 북한의 비핵화 과정과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 한미가 항상 같은 소리를 내야 한다”고 속도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미 北발사체 발사에 워킹그룹 회의 결과 비공개로 ‘신중론’ 펼쳐

비건 대표는 1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북핵 수석대표 협의와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계획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강 장관과 비건 대표의 면담 모두발언이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한미 양측의 합의하에 비공개하기로 했다. 비건 대표는 워킹그룹 회의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었던 약식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북미관계가 다시 냉각기를 겪게 되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신중한 논의를 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한미는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북한과 대화 분위기 조성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또다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면서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어 한미 협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도 변수다. 대북제재와 인도 지원을 분리해 식량지원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던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그것들은 소형 미사일이고 단거리 미사일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협상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협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하지만 나는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삼는 중장거리 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강대강 맞대응은 피하면서 북한에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탄도미사일-단거리미사일’ 한미 북한 발사체 놓고 미묘한 이견

우리 군은 북한의 발사체가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봤다. 다만 미 국방부가 이번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한 만큼 안보리 결의 위반에 따른 제재 논의와 함께 대북 식량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커졌다. 북한의 무력시위 수위 상향이 식량지원보다 제재완화 등 근본적인 비핵화 상응조치를 내놓으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결정을 미국이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7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식량 지원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축복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며 “(대북 지원 정책이)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발표해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국은 비축하는 재고미의 보관 비용만 해마다 6000억원”이라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도 식량 지원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북한은 10년 만에 최악의 식량난에 봉착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EP)과 국제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3일 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구의 40%인 1010만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북한의 1인당 하루 식량 배급량도 300g으로 전년 대비 22% 감소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의 식품 소비 수준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낮고 식단도 제한적이라며 가정에서는 음식의 양을 줄이거나 적게 먹어야 한다”며 “어린이와 임산부가 영양실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136만톤(t)의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는 “한미 모두 북한 발사체 발사에 상당한 실망감을 갖고 있다”며 “북한은 식량지원 외에 플러스알파로 비핵화 상응조치 등을 원해 자신들이 바라는 것에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을 과거처럼 이른바 ‘벼량 끝 전술’로 발사체를 발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 평론가는 “마냥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한미도 각자 내부적인 입장을 정리해 워킹그룹 협의에 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북한의 두 차례 미사일 도발은 외교적인 시위로 미국에게 다른 계산법을 갖고 나오라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이라며 “인도적 지원 식량 문제는 북한에게 긴급한 상황이고 북미 대화 필요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이러한 발사체 발사 행위는 오히려 실(失)을 안겨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평론가는 이어 “만약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한미 양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면 남북 대화를 통해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한미 모두 신중하게 우려할 대목이 많아 보이는 만큼 지금부터 1~2주가 긴장되고 중요한 국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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